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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죽음아, 날 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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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아, 날 살려라
유헌식 지음
휴머니스트


코끼리 사냥꾼들은 코끼리 무덤을 꼭 찾고 싶어한다고 한다. 많은 코끼리 사냥꾼들이 코끼리를 노리는 것은 상아를 탐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끼리라는 생물이 묘해서 죽을 때가 되면 홀연히 사라진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죽을 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만약 코끼리 사냥꾼이 코끼리 무덤을 찾을 수 있다면 수많은 코끼리의 뼈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코끼리 무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때는 별 생각없이 지나쳤다. 코끼리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생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어제 '한반도의 공룡'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성장해서 새끼를 키우던 공룡 점박이가 새끼를 죽인 다른 공룡과 싸워 치명상을 입게 된다.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다른 공룡들과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공룡 한 마리가 있었다. 반면 사람은 사람의 죽음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도 자신의 죽음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모든 생물은 죽는다. 인간도 그런 생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이라는 것은 당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 책 '죽음아, 날 살려라'에서는 다양한 매체에서 마주하게 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대상은 인간이다. 타인의 죽음에 이입을 해서 노래를 하는 '상엿소리'부터 죽음을 앞두고 고향집에 간 남자의 이야기 '시계가 걸렸던 자리'까지를 다루고 있다. 다양한 매체에서 사람들의 죽음을 말한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서 일수도 있고 당연한 일임에도 너무도 충격적으로 느껴져서 그럴 수도 있다.

 

하기야 어느 생명체의 죽음이 충격적이지 않을 수 있겠냐만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고질병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책 안에서 다룬 텍스트 중에서 '이반 울리치의 죽음'이라는 것이 있었다. 자신의 생명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음을 이반 울리치는 느낀다. 검은 구멍 같은 죽음이 그를 서서히 끌어당기고 있었고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그의 삶에 대한 집착이 그를 삶 쪽으로 당기고 있었고 당연히 다가오던 죽음도 그를 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조차도 그는 자신의 죽음을 부정한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예의바른 태도를 취하지만 그의 죽음을 부정한다. 전부 그가 죽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이반 울리치의 친구는 후에 그의 장례식에 와서 그를 동정하지만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 일은 이반 울리치에게 생긴 일이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며 또 일어날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머리로는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고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정말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한 예로 만화 '허니와 클로버'에 이런 부분이 있다. 핸드폰을 통해서 본 100년 후의 자신의 생일에 알람을 설정해두는 것이었다. 자신이 있지 않을 그 날에 울리는 생일 축하노래를 말이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그 생각이 나서 핸드폰을 들었다. 먼저 2050년의 생일을 찾아보았다. 노인으로 맞이하게 될 생일의 요일은 목요일이었다. 그 순간 오싹해졌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약 40년 후의 자신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묘한 불쾌감을 억지로 누르고 다시 2100년의 생일을 찾아보았다. 그 날은 수요일이었다. 기적이 있지 않다면 자신이 결코 존재하지 않을 생일이 그 곳에 있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자면 어리석은 일이다. 죽지 않을 인간은 없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려웠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티토노스'의 주인공은 새벽의 여신의 사랑을 받고 불멸을 얻지만 영원한 젊음을 얻는 것을 잊어버리고 계속 나이 들어간다. 그가 끝없이 늙어가서 매미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 글에서는 그는 여신에게 자신의 죽음을 간청하지만 그 때 그 글을 읽은 기분은 인간은 제 생명대로 살아야 한다가 아니라 왜 그가 영원한 젊음을 달라고 하는 것을 잊어버렸을까 하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에서 뱀파이어 루이스는 시간과 동떨어져 방관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만 죽음의 공포가 다가올 때는 그것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사람이 꽤 될 것이다.

 

인간은 생명이 유한하기 때문에 더 빛나게 생을 살 수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생이 더 빛났기에 죽음이 더 두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반 울리치가 최후의 순간 말했던 것처럼 '죽음이 이제 무섭지 않다'라고 할 수 있거나 진리에 대한 절대적 믿음으로 독배를 아무렇지 않게 들이킨 소크라테스 같을 수는 없다. 인간은 자아가 강한 오만한 생명체인 것 같다.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죽음마저도 자신은 비껴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리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허나 삶이 중요한 만큼 죽음의 무게가 더 무거운 법이라 이 책 '죽음아, 날 살려라'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몰랐던 자신의 비논리적 모습을 알게 되기도 하고 죽음에 대한 거대한 공포를 맛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가는 시간을 어디에 가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언젠가는 죽음의 실체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가장 궁금하지만 동시에 알고 싶지 않았던 죽음을 다양한 각도로 읽어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먼저 죽음을 다룬 다양한 소설, 시, 영화, 노래를 소개하고 토론이 전개되는데 그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거슬리기도 했다.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소개된 텍스트의 느낌이 너무 강렬한 경우에는 그들의 토론이 쓸모없는 곁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토론 후에 설명이 있던 것은 좋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생각의 파편이 한군데로 집중되어 하나의 생각으로 묶여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인상적 제목, 인상적 소재를 다룬 '죽음아, 날 살려라', 제목대로만 실제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에이안(aria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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