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유학으로 승부한 엄마표 자녀교육
손현란 지음
행복한나무
조기유학을 보내는 것이 좋은가하는 질문은 구구한 논란거리가 되어왔다. 어릴적부터 외지에 떨어져 나가 있으면 정신적인 성숙과정기에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고 성장할 수 있고 또한 자신의 마음속에 조국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문제가 있을 것이란 말이 있다. 그리고 일찍 나간 외국생활때문에 영어나 외국어 하나는 유창할지 몰라도 이후에 한국인으로 살아가는데 정체성의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고 더우기 민감한 청소년기에 주변 친구들과 유리된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유학은 대학을 졸업하고 가는 것이 순리라고 한다. 이런 경우는 조기유학의 병폐를 충분히 염두에 둔 것이고 성숙한 판단을 할 수 있는 20대초반의 유학이야말로 일대일 주관있는 유학일 수 있기때문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영어정복이 국내에서는 여러 교육시스템의 열악함으로 인해 생활화될 수 없으므로 영어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배우게 하기 위해 자녀를 일찌감치 외국으로 아니 미국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강남이 꼭 아니더라도 요즘 괜찮게 사는 중산층이상의 가정에서는 자녀중 한명 이상을 교환학생이라도 보내지 않은 예가 별로 없다고 한다. 사실 주변의 아는 사람들만해도 자녀를 데리고 엄마가 기러기를 하는 경우나, 아니면 부모중 한 사람의 외지 발령이나 연수를 겸하여 자녀를 데리고 가는 경우, 또는 운이 좋은 케이스겠지만 아빠의 외국근무로 가족이 함께 몇년을 살다 귀국하는 예가 허다하다. 부모동반이 아닌경우에는 교환학생알선업체를 통해 공립, 사립학교의 교환학생을 보낸다거나 그도 아니면 몇주 몇달의 어학연수도 필수코스로 생각한다. 이쯤되면 도대체 우리나라는 영어교육하나 자신있게 시키지 못하는 나라가 아닌가 한심할 노릇이다. 부모입장에서는 이런 행동이 단순한 허영기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게 분명하고 말교육하나 때문에 치러야하는 비용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영어 공교육의 허점이 불만스럽기 짝이없다. 사실 강남구 대치동에선 외모만 서양인처럼 생기면 영어과외등의 일자리가 저절로 풀리는 것인지 코만높고 눈만 둥그런 외인은 강남엄마들의 타겟대상이 되곤한단다. 웃음밖에 안나오지만......
영어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된지 너무 오래다. 영어교육때문에 가는 조기유학과 달리 능력이 되는 아이의 조기유학을 그 누가 말릴 수 있을까. 조기유학이 이슈가 되고 때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중도때도 없이 너도나도 다들 간다니, 갔다와서 덕좀 봤다는(이를테면 일년간 갔다온 미국체류나 교환학생경험으로 딸리는 일반교과성적에도 불구하고 글로벌전형에 합격했다는 대입현장의 뉴스를 접할 수 있다) 이야기를 듣고, 돈있는데 내자식이라고 왜안보내하는 부화뇌동형 부모들때문이 아닐까. 솔직히 말해 나역시 돈 쌓아놓고 손가락두들기는 형편이라면 자식의 조기유학 충분히 생각해봤을 것같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왠만큼 형편은 되지만 약간의 아니 상당한 어려움을 감수하고라도 자식을 조기유학보내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 더 문제다. 학교생활에서 낙오되면 미리 외국으로 보내 영어하나라도 배워오게 하는 사례가 허다하고 잘 되면 좋지만 적응하지 못해 조기유학의 부작용을 그대로 드러내는 아이들사례도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엄마는 한국에 있고 아이들만 간 유학인 줄 알았다. 그리고 책 소개글을 읽고 엄마가 기러기아빠를 만들고 자신은 기러기엄마가 되면서 아이들과 함께 유학을 가 딸 셋을 명문대에 보낸 이야기인 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책을 읽으니 여기까지 확실히 맞는 얘기였다. 그런데 좀 아쉬웠던 것은 엄마의 친정은 바로 미국, 그것도 자신이 거주한 아틀란타에 있었고 적어도 정서적으로는 엄마가 안정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점이다. 기러기 엄마인 저자에게 은근히 기대한 것은 홀로 아이들을 데리고 낯선 땅에서 어떻게 자립하고 떳떳하게 아이를 키웠는가하는 팁이었다. 그리고 과감히 남편을 홀로두고 떠나 견뎌야했을 외로움과, 학교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혼자 처리하면서 견뎠을 또는 일상생활에서 자녀들뿐아니라 주변의 외국인들과 부딪칠 수 있는 여러 이야기들에 공감하고, 그것들을 모델로 삼고 싶었는지 모른다.
물론 지은이는 꿋꿋하게 딸 셋을 키운 강한 엄마임에 틀림없다. 자녀들의 면학분위기를 위해 실제로 자신도 대학에 등록해 공부를 계속한 얘기는 본보기가 되었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니가 아니라 무엇을 질문했니라고 하교한 아이에게 말했다는 얘기도 적극적이고 바른 생각을 가진 엄마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이 집 아이들은 한결같이 문제아가 아니라 모범생 그것도 전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초모범생이었다. 복받은 엄마이지만 그게 아이들 타고난 재능떄문만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제일 큰 희생은 싫은 관계도 아님에도 남편과 별거아닌 별거생활을 해야하는 상황이었을 것같은데, 이 엄마는 초창기엔 방학동안 귀국이라는 방법을 이용하고 후기엔 남편의 미국방문이란 방법으로 현명하게 참고 지냈다. 근데 보통의 상식으로 그 숱한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는 게 후회스럽지 않을까 의문도 생긴다. 내가 아는, 6개월 언어연수를 아이 둘을 데리고 캐나다로 다녀온 어느 엄마는 정말 떨어져 있는 것은 못할 노릇이라고 앞으로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노라고 강변했다. 지은이인 엄마는 모든 여건이 수월했는지 모르겠다. 아니 모든 여건을 자신의 정확한 목표를 위해 맞추도록 조정했고 또 노력했을 것이다. 비교우위의 법칙이 있듯이 그녀에게 최우선의 목표는 자녀교육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같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것이 아니다.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겠다고 그 어떤 부모도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이건 의식적이라기보다 거의 생물학적인 것이다. 가족의 개념에서 자녀교육이 최우선이 될 수도 있지만 나로선 가족구성원의 적절한 행복공감도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시간적 공간적 공유만이 다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이건 선택의 문제다. 나역시 큰 일을 하기엔 무리인가보다. 이곳에 뿌리를 둔 직장에 다니는 남편이라 아이들 데리고 천만리를 떠나지 못하는 나는 용기가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체류를 위해 비자연장을 위해 엄마가 신학교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는 지은이 주변 어떤 엄마 얘기는 쓴 웃음을 짓게한다. 조기 유학간다고 다 잘되는 건 아니어서 딸 셋을 남부럽지 않은 대학에 보낸 주인공의 그간의 노력에 무한한 박수를 보낸다. 미국에서 자녀교육으로 무슨 상까지 받았다는 전혜성여사의 말씀중에 기억나는 말이 있다. 엄마가 사회생활을 하고 공부하는 것을 보이는게 최선의 자녀교육이라는 말, 충분히 공감된다. 그런데 도대체 젖먹이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 제대로 하면서 남편과 같은 공간에 지내면서 즉, 가족에게 신경쓸만큼 최소한의 노력을 하면서 바깥일도 제대로 해낸다는 것이 내겐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다. 여자가 바깥일을 할 수 있는 건 다른 여자의 희생이나 가족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대체 우리의 사회복지는 어디까지 와있을까, 요즘은 아이양육으로 발을 동동굴리는 젊은 엄마들이 없을까... 엄마들의 취업도 아직은 선택이다. 유학시켜 성공의 길에 들어서게한 자녀를 둔 엄마이야기에 솔깃해지면서 한편으로 우울해지는 건 이때문이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구름산책(fj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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