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의 철학사상과 정치사상을 비교할 때 자주 거론되는 두 인물이 바로 한비자와 마키아벨리이다.
그 이유인즉 근대지향적 통치철학이라 할 심리조작(권모술수)의 성격이 공통성을 띠기 때문이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 두 사상가 모두 통치공학적 차원의 냉철한 인간 이해와 심층적 분석을 통해 현실추동적 정치철학을 전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고대중국 전국시대 말기 한나라의 여러 공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일찍이 형명과 법술을 익혀 중앙집권적 봉건전제정치 체제를 적극적으로 창도한 법가 이론의 집대성자인 한비자를 만나러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야기의 숲에서 한비자를 만나다』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비자에 관해서 먼저 알아두어야 한다.
그럼 한비자는 누구인가?
그는 한나라 왕족의 일원이었지만, 모친의 신분이 낮은 '서공자'였다. 젊었을 때부터 강대한 진나라 앞에 풍전등화가 된 조국의 현실을 개탄하며 상앙등의 개혁정책에 심취했다. 말년에 현실정치에 참여하여 왕에게 부국강병책을 진언했으나, 말더듬이였다고 전해질 정도로 언변이 없어 받다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훗날 시황제가 된 진왕은 한비자의 <고분><오두> 두 편을 읽고, "이 사람과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이야기의 숲에서 한비자를 만나다』이 책은 사실 어려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한비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수많은 원문의 숲을 끈기있게 읽고 이해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저자가 지혜를 찾아서, 개혁가의 길, 권력의 메커니즘을 찾아서로 잘 구분하여 설명하고 『한비자』 해제와 『한비자』에 대한 평가를 부록으로 이 책속에 넣어 두어 이해하기가 한결 쉬웠던 것 같다.
『이야기의 숲에서 한비자를 만나다』이 책은 2500년간 제왕학의 고전으로 군림할 정도로 리더와 지도자에 대한 충고와 교훈 또한 가득하다. 수천 년간 중국을 다스려왔던 법가 사상을 집대성하고, 당대까지 전해오던 수많은 이야기와 관점들을 담은 『한비자』는 그 자체로 지혜와 우화의 백과전서라 할 수 있다.
한비자는 법이라는 커다란 개념 속에서 다양한 법가들의 견해를 종합하여, 국가를 통치하기 위한 객관적 행위 기준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한비자에 있어 법치의 완성은 곧 도의 실현이다. 한비자가 생각하는 법치주의의 궁극적 이상은 ‘군주가 형벌을 행하지 않아서 사람을 상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선한 의도가 아니라 제도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한비자의 법치주의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의 건설을 가속화해 중국 역사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비자가 그리는 좋은 지도자란 결코 자비로운 지도자가 아니다.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백성을 아끼는 지도자보다는, 법을 엄격하게 정하고 공과 과에 따라 확실하게 상과 벌을 내리는 지도자, 신하를 믿고 사랑하기보다는 그 신하가 최선을 다해 일을 할 수밖에 없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다. 결국 지도자의 인품이나 덕과 같은 우연한 속성에 의해 잘되는 국가가 아니라, 지도자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더라도 그에 상관없이 잘 돌아가는 시스템을 갖춘 국가를 한비자는 바랐던 것이다.
한비자는 인간 본성은 이해득실만을 따질 뿐 도덕성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늘 어긋난다. 예컨대 군주와 신하가 생각하는 이익이 각기 다르며, 남편과 아내, 형과 아우 사이에도 이해는 서로 엇갈리기 마련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군주와 신하는 남남끼리 만나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관계이므로 군주가 신하에게 충성심만을 요구한다든지 도덕만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군주와 신하는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신하에게 충성심이란 없다. 그러므로 신하의 이익이 이뤄지면 군주의 이익은 사라지는 것이다.” (167쪽)
그래서 한비는 이들을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으로 법을 제시한 것이다. 한비의 통치공학적 차원의 냉철한 인간 이해와 심층적 분석은 현대 기업경영에서 인사관리에도 적용시킬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면서 크게 관심을 가질것으로 생각된다.
일러두기> 한비자는 원래 '한자(韓子)'라는 존칭으로 불렸다. 한자란 '한 선생님'이란 뜻이다. 그러나 당나라때 문장가인 한유(韓愈)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한자(韓子)'라는 존칭으로 불리면서 한비는 '한자(韓子)'라는 존칭을 빼앗긴다. 한유에 대한 존칭 '한자(韓子)'와 구별하기 위해, 송나라 사람들은 그를 '한비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그의 책 또한 『한비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푸른하늘(www7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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