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순백의 하얀 천사. 순결하고 순수하며 가장 아름다운 것에 대한 찬사의 말, 천사. 그러나 전경린의 천사는 거기서 더 나아가 하얀 에고로서의 천사이다. 그래서 그 천사는 하얀 솜사탕 같은 달콤함은 없지만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
문학은 어렵다. 설명하고자 하면 더 어렵다. 그래서 《천사는 여기 머문다》를 감히 내 입으로 설명하기보다 그녀의 수상작에서 인용하는 것으로 작품 설명을 대신하려 한다. 기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이기도 하다.
“생명력은 교조적인 윤리나 굳은 관습, 안전한 제도, 방어적인 도덕성에 정주하는 데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개체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경험 속에서 스스로 정화하며 침범하는 무감각에 대항해 거듭 자신을 새롭게 낳는 힘이다. 타성에 젖어 산 채로 죽음에 잠식되어 가는 존재들이 도처에 만연하다.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은 생의 최고의 사치인지도 모른다. 수상작품의 제목은 그래서 붙여졌다. 천사는 여기 머문다. 그것은 선악의 의미를 넘어 우리 내부에서 비상하는 생명을 은유한다. 살아 있음의 덜덩에서 당신 얼굴에 천사가 떠오른다. 천사는 생명이다.”
글을 읽는 내내 어찌나 불편하던지. 제3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의 대상으로 선정된 전경린의 《천사는 여기 머문다》와 그 연장선상에 있는-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연작 첫 번째인- 《천사는 여기 머문다1》은 모두 단편으로 두 편을 합쳐보아도 50쪽 가량이다. 그러나 마치 장편소설을 읽은 듯 여운은 길고 가슴이 무거워졌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깨진 유리조각이 되어 가슴에 한 줄 한 줄 상처를 내었다. 그녀의 글은 유독 날이 서 있고 피 냄새가 난다. 혹자는 그래서 귀기하다고 한다. 마침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겹쳐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회에서 여자가 자신의 에고를 펼치며 살아가기란 그리 녹록치가 않다.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문학적 자서전 ‘쓴다는 것의 현재성이 나를 구한다’에서 삶이 견디기 힘들 때가 적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녀는 풍랑에 이리저리 흔들려왔다. 그 속에서 에고를 잃지 않고 차가운 시선에 대항할 힘을 찾고자 글을 써 왔다. 그래서 작품 하나하나가 그녀이다. 모두 같은 이야기이지만 모두 다른 ‘현재성’에서 쓰인 다른 이야기가 전경린이라는 작가의 삶으로 이어진다.
문학적 평가를 논하기에 너무 부족한 사람이니 불륜과 파멸, 그리고 자기 찾기라는 통속적인 주제를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다는 문학계 평가는 차치하고, 나는 그녀를 같은 여성으로 놓고 말하련다.
내가 나의 인생-여자로서의-을 놓고 한참 고민하던 때 등대 역할을 한 것은 은희경, 공지영, 박완서 같은 여성 작가들의 책이었다. 평범한 여자가 구구절절한 그들 작품에서 찾은 교집합은 가부장적 질서 아래 여성이 받는 사소하고 큰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 삶의 목표와 자신의 가치를 찾는 과정이었다. 소설 속의 그녀들은 앞으로 나아갈 자기 안의 원천의 힘을 발견했고 나는 삶의 목표와 가치를 찾는 인생 여정이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천사는 여기 머문다》도 그런 여정을 밟고 있다. 탈고할 때마다 성숙해지는 것을 《천사는 여기 머문다1》보다 《천사는 여기 머문다》가 더 완성된 느낌을 주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 몇 편의 작품을 지나면 전경린의 천사는 비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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