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서
이이화 지음
김영사
이이화 선생님의 <인물로 읽는 한국사>시리즈는 인물을 통해 시대사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역사 속 인물을 재조명하는 책들이나 이이화 선생님의 [그대는 적인가 동지인가]를 읽다보면 인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정신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광해군이 아마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광해군은 동생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시킨, 부모도 모르고 사은의 나라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왕이라는 오명을 벗고 임진왜란 기간 동안 많은 업적을 세우고, 전란 후 페허가 된 나라를 수습, 재건하고, 대동법을 실시하며, 등거리외교를 통해 실리를 추구한 탁월한 외교전문가로 되살아났다.
광해군의 이러한 평가는 인조의 자리에서 바라본 것이 아니다.
동인이나 서인의 입장도 아닌 조선이라는 국가의 관점에서 그를 평가한 것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역사 속 인물을 평가할 때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서]는 이이화 선생님의<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 열 번째 권으로, 근대와 현대에 활동한 열 명의 정치가들을 담았다.
이들은 모두 한국 근대와 현대의 주역이거나 그에 맞선 인물들이다.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는 첨예한 갈등과 대립으로 정치적 혼돈과 이데올로기가 극심했던 시기다.
저자는 식민지를 벗고 해방이 되었으나 남과 북이 갈라지는 아픔을 겪고, 동족상잔의 비극과 남북이 각각 독재권력 정권을 유지하며 대결구도로 접어든 시기의 정치가를 모았다.
[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서]는 이승만, 박정희, 신익희, 조병옥, 조병암, 장면, 김두봉, 김일성, 허헌, 백남운을 네 부류로 나누어서 소개한다.
우리는 이들이 써놓은 역사 위에 오늘의 역사를 이어쓰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역사를 달리 썼다면 오늘의 역사 또한 달라졌을 것이고 이들에 대한 평가 또한 달라졌을 것이다.
만약 이승만의 정치적 맞수 신익희가 석연찮은 죽음을 맞지 않았다면, 조봉암이 간첩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지 않았다면 건국논쟁의 주인공이 되어 국민을 혼란 속에 몰아넣지 않았을 것이다.
박정희 역시 이승만의 장기집권 도모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다면 독재는 희석되고 경제대통령으로 부각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역사에서 '가정'은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책이 다룬 열 명의 정치가 중 어렴풋하게 알고 있는 허헌을 자세히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한 사람의 생애와 그와 연관된 사건이나 시대를 읽는 재미는 역사책을 즐겨읽는 이유가 되어준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과 관련자 14인을 포함한 47인에 대한 변론을 맡은 허헌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법조인이다.허헌은 변호사 업무 외에 여러 사업을 벌이고 교육 사업에도 열중한다.
구미 유학의 뜻을 품고 떠난 미국에서 유학의 꿈을 접고 6개월 동안 여러 나라를 시찰하다가 벨기에에서 개최된 국제약소민족대회와 반제동맹 창립대회에 참관한다.
이 대회는 사회주의권에서 주도한 것으로 참가 뒤 새로운 현실관을 갖게 된다.
그는 식민지 시기 한 번도 일제와 타협한 적이 없는 지조를 지닌 인물이다.
일제에 의해 모진 고문과 딸의 망명 혐의도 죄명에 포함 된 옥고를 58세의 늙은 몸으로 치르나 김일성대학 총장으로 개학식에 참석하려고 대령강을 건너다가 범람한 홍수로 배가 뒤집혀 익사한다.
저자는 "그가 줄기차게 민족운동과 민권운동을 벌이고 난 뒤, 마지막 인민공화국에 참여한 사실을 두고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혼란스럽다." 라고 그에 대한 평가를 아낀다.
역사 중 근현대사는 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나 이 책을 통해 흥미롭게 근현대사를 살필 수 있었다.
인물로 읽는 한국사는 한 인물과 그와 관련된 또 다른 인물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준다.
허헌이 그의 딸 허정숙과 이용익을 자연스럽게 내 궁금증 안으로 불러들인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역사책만 주는, <인물로 읽는 한국사>시리즈만 갖고 있는 커다란 매력이다.
두 사람을 다룬 책을 살피러 가야겠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마음먹기(aud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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