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
필리프 프티 지음
이레
효율과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합리적인 사회에서
이처럼 무모한 도전을 즐기는 사람은 '괴짜' 또는 '기인'으로 분류된다.
필리프 프티, 이 프랑스 남자는 1974년 8월 7일 아침 6시 45분,
지금은 9.11 테러사건으로 더 잘 기억되는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사이에서, 줄과 장대에만 의지한 채 꼬박 여덟 시간을 춤을 추었다. 400미터 고공에서.
그것도 이 날, 이 무모한 도전 하나를 위해 6년을 준비한 끝에 말이다.
그는 쌍둥이 빌딩이 채 다 올라가기도 전에, 그것도 고국이 아니라 미국 땅에
고층 빌딩이 세워진다는 기사 하나를 발견하고부터 이 날을 꿈꾸었다.
역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우리는 "도대체 왜?"라는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대체 어떤 가치가 있고, 무엇에 쓸모가 있다고,
열여덟 살이던 1969년부터 스물 네 살이 되는 1974년까지 이 한 가지 일에 매달렸단 말인가.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목숨까지 담보로 하는 이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에
그의 온 열정과 젊음을 다 쏟아부었단 말인가. 게다가, 그는 이 일로 체포되기까지 하여 '세기의 예술적 범죄'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내가 즐겨보는 TV프로그램인 M방송국의 '무한도전'에서 소와 씨름을 하고, 개와 헤엄치기 경주를 하고, 전철과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것보다 더 무모한 이 도전을 말이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고공 줄타기'를 할 때의 흥분이다.
보다 높은 곳에서 줄타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 하나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그가 직접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는 열여덟 살, 치통 때문에 찾아간 치과에서 우연히 읽게된 쌍둥이 빌딩 기사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흥분과 좌절과 집념 속에 치밀한 계획과 준비 과정을 거쳐 마침내 그의 꿈에 도달한다. 그의 이야기는 데일리 텔레그라프의 평처럼 '범죄소설'로 읽힌다.
무모한 목적에 비하면 그의 계획과 준비는 더 없이 과학적이고 치밀하여, 그가 꿈꾸는 그 무모한 도전이 고귀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꿈을 상실한 시대. 생존에 대한 두려움과, 애초부터 만족함을 모르는 비교 가난으로
성공에 노예가 된 현대인들은 돈키호테의 몽상을 버린지 오래다.
나도 그렇게 교육 받으며 자라왔다.
처음 '샤프'라는 기계를 쓰게 되었을 때, 나는 샤프심통을 모으는 것이 취미였다.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님도 쌓여가는 샤프심통을 볼 때마다 내다버리라고 야단을 치셨다. 내가 받는 질문은 하나였다. "그거 모아서 뭐하려고?" 나도 차츰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친구들처럼 '우표'를 모으는 일보다 더 가치가 없으며, 효용성이 없음을.그리고 몇 년을 모은 샤프심통을 아낌 없이 내다버렸다.
그 이후로 나의 취미와 열정과 꿈은 모두 효율과 가치와 의미로 판단되어졌다.
필리프 프티의 꿈, 구름 위에서 새처럼 자유롭고자 했던 그의 욕망은,
인류에 희망을 던져준 것도 아니고, 지금은 내려앉은 그 건물처럼 잊혀진 그날의 그 사건은, 그저 그의 '만족'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그는 하고 싶었고, 하고자 했으며, 했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나아가 인류에게 어떤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날마다 보다 많이 먹고, 더 좋은 것을 먹고, 더 편히 쉬고, 더 편히 자기 위해 애쓰는 우리의 삶보다 그의 도전과 시간이 더 무모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정신 나간 사람은 그가 아니라, 꿈을 잃버리고 살면서도 모르는 우리가 아닐까.우리의 치열한 삶이, 진심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인지, 누군가가 만들어준 이상을 따르고 있는 것인지, 사회적인 과시를 위한 것인지, 단순히 안전한 삶을 위한 생존본능인지 그것조차도 가늠하기 어렵다면,그의 도전을 무모하다고 말할 자격이 없을 것이다.
내 안에도 이런 광기가 살아났으면 좋겠다.
"그래 이 일이야. 이것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라고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모두가 무가치하고,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일이라고 비난할지라도,
내 마음에 이런 불꽃 하나 일었으면 좋겠다.
6년 바쳐 구름 위를 걸었던 필리프 프티.나도 그처럼, 그와 같은 흥분과 감격으로 '내 생애 최고의 날'을 살아보고 싶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신의딸(ceo71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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