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
리처드파인만 지음
승산
먼저, 책의 제목에 대해 약간의 불만을 말하고 싶다. <The meaning of it all> 이란 제목을 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과학이란 무엇인가?>로 번역을 해두었는지가 궁금하다. 이 책은 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하는 책이 아니다. 과학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해주는 책도 아니다. 제목 그대로 '모든 것의 의미'에 관한 책이다. 다만, 저자 파인만의 분야 특성상 '과학'이 세상을 보는 눈이 되었을 뿐이다.
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책 첫부분, 그러니까 총 세 번의 강의 중 첫 번째 강의에 해당하는 부분에서만 언급한다. 앞으로 말하고자하는 논지에 대한 시선을 확실히 해두기 위해서다. 과학 자체를 설명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닌 것이다. 아마 제목에 낚이는 사람이 많을 책이다.
사실, 제목의 오류만 제외한다면 훌륭한 책이다. 파인만의 강의는 내가 대학 1학년 때 처음 보았던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처럼 명쾌하며 더없이 훌륭했다. 강의록의 형식이라 다소 말이 두서없고 꼬이는 점이 있긴 했으나 그 내용에 빠져들면 마치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생생하게 보이기도 한다.
첫 강의인 과학의 의미,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것과 파인만이 말하는 그 의미가 너무나 똑같이 일치해 깜짝 놀랄 정도였다. 나도, 어쩔 수 없는 과학도인가보다. 과학에 대해서는 오해하는 사람이 참 많다. 과학자에 대해서도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알고보면 무엇보다 명쾌하고 아름다운 것이 과학이며 누구보다 순수하고 작은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과학자이다.
과학은 '어떤 것을 관찰을 통해 발견하는 것'이다. 과학의 본 목적은 '발견'에 있다. 과학과 이어지는 기술이 '응용'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면 과학은 발견 그 자체가 목적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과학자는 '발견하는 사람'이다. 어떠한 이득이 없다 해도, 그 현상을 발견하는 사실 하나만으로 행복을 느끼고 즐거워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계속 과학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동생에게 들은 과학자에 대한 우스갯 소리 중에 다소 극단적이지만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수학자의 집에 불이 났는데 이 수학자는 불길을 관찰하고 불을 가장 빨리 끌 수 있는 경로와 물의 양을 계산했다. 그런데 그 후에 이 수학자는 자신이 도출해낸 결과에 너무나 만족한 나머지 불길마저 잊고 행복에 젖어 잠드는 바람에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황당하기는 하지만 과학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극단적으로 알려주는 이야기라 하겠다.
파인만은 이 책을 통해 과학이 지닌 양면성에 대해서도 감탄할 만한 명언을 남겼다.
"과학은 천국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이면서 동시에 지옥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하지만 '천국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라는 가치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과학도 좋은 측면이 있는 반면 위험한 측면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비록 그렇다 해도 그 발견 자체는 학문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사실 과학의 책임이 아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책임일 뿐.
그 외에도 파인만은 과학 그 자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유감없이 밝히고 있다. (이 사람, 정말 과학을 사랑하고 학문을 아끼는 사람이다. 과학을, 공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써 너무나 닮고 싶은 사람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과학의 속성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불확실성'이다. 이것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과학의 속성이며 가장 중요한 요소다.
과학의 이론에는 확실한 것이 없다. 그렇다고 '추정'할 뿐이다. 절대적이라고 믿던 것이 세월이 흘러 깨질 수도 있다. 이러한 속성은 과학 외의 분야에서도 훌륭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파인만은 이를 통해 종교, 사회 및 정치 등 '모든 것'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 강연에서 여러 번이나 강조한다. '모든 것의 의미'는 아직 답이 없으며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라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굉장한 슈퍼 컴퓨터가 수천년의 시간을 들여 '모든 것의 의미'에 대한 답을 내놓는 이야기가 있다. 컴퓨터의 답은 '42'. 결국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답을 알 수 없다.
그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점을 역설하면서 역사 속의 독재 정치(나치 정권 등)이 '자신의 믿음에 너무 확신을 가진 나머지' 여러 사람들을 괴롭게 했다는 사실을 예로 들었다. 자신의 신념에 갇혀서 다른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종교도 그런 면에서 충돌하는 면이 너무나 많다. '절대적인 믿음'을 전제로 하는 신앙에 있어서 과학의 '불확실성'은 그와 언제나 모순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종교와 과학이 충돌한 예는 많다. 그 이유에 대해 내가 들은 어떤 말보다 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그는 요점을 잡아주었다. 그야말로 속이 시원해질 정도의 풀이다.
그렇다고 그가 종교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사고의 개방이다. 우리는 무지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확실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지금 알고있는 것을 확실하다고 말하지 말고 다른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두라고 한다. 그것이 자신의 좁은 세계와 사고에서 벗어나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과학적인 사고의 기본이며 다른 분야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 강의는 가장 난해하고 길며 복잡한 내용을 한꺼번에 쓸어담고 있다. '비과학적인 시대'라는 희한한 제목으로 시작한 이 강연은 언뜻 과학적으로 보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비과학성을 말하고 있다. 독심술, 마술, 기적 등 과학자의 눈으로 본 기현상들은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답은 항상 그렇다.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결국 다들 불확실하고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늘 강조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하여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며 세상에 해를 끼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다소 난해한 세 번의 강연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또 많은 여운을 남긴다. 아마 이 책은 읽는 이들에 따라서 각기 다른 흔적을 남길 것이다. 나에게는 '과학'이란 것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과학적 사고의 유용함을 알려줄 것이다. 어떤 이는 파인만의 견해에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분야의 누가 읽어보아도 가치가 있을 책이다. 파인만의 능력은 언제나 놀랍다. 다분히 과학적인 속성 하나를 전체 사회, 이 세상 모든 것에 유연하게 적용시키며 전체적인 그림을 머리에 남겨준다. 단, 파인만의 책을 처음 읽는 사람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강의록 형식이라 논리성이 부족한 전개와 쉴새없이 이어지는 말들, 그리고 발로 했는지 손으로 했는지 알 수 없는 번역까지 이 책을 읽기에는 힘든 코너가 많다.
그래도 역시 이 책을 읽을 때의 최고 주의점은 그것이다. '제목에 속지 말라!'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나가비(wicked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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