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 서해문집| 2007.10.15 | 271p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오늘 내가 살아 가고 있는 사회가 이들의 삶위에 서 있는 느낌이 였다. 그래서 막연히 미안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서는 내가 당하는 모욕같았고, 그래서 수치심도 느끼고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항거하는 마음이 되었다면 자조적일지 모르지만, 항상 앞서가는 자는 앞서가는 만큼의 시련과 어려움을 겪고 뒤에 오는 자는 앞선 자가 닦아 놓은 토대위를 걸어가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요즘 서점에 "여성"에 대한 책이 넘쳐나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왜 이제야 "여성"이 화두가 되는 것인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은근히 부아가 치미기도 했다. 여성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우리들이 무얼 그리 잘 못 살고 있어 이렇듯 제대로된 살이의 방법이라고 많은 책들이 제시를 하고 있는 것인지 반은 안타까운 마음이고 반은 그 나마 이제라도 올바른 시각으로 제자리 찾기를 하는 것 같아 다행스러운 마음이기도 하고 그렇다. 그런 배경속에 과거 우리 여성 예술가들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 가치있게 평가되기를 바라고 이런 의미로 여성 예술가 열전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는 여자라는 이유로 그들이 이뤄된 예술가적인 성과가 예술가로써의 가치보다 여성으로만 평가 받아온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저자인 홍인숙씨는 이 책을 볼때 주의해야할 두가지를 서두에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누군가의 연인이나 누군가의 딸등등의 흥미로운 얘깃거리로 소모되던 여성 예술가들이 창조자로써, 작품으로 이야기 되어야 한다는 것과 여성 예술가들 서로가 알게 모르게 서로 관계를 맺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이 두가지 관점으로 여성 예술가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황진이와 이매창인데, 제목에서 여성 예술가들이라 하여 근.현대에 등장한 윤심덕이나 최승희를 막연히 연상했었는데, 시대를 잘 못 타고 난 죄로 기녀라는 굴레를 쓰고 살았지만, 그 삶에 안주하지 않은 그녀들이 대단했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네들이 예술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기에 황진이와 이매창으로 시작하는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시작부터 놀라웠다. 막상 나도 여성이면서 여자라는 테두리로 평가를 하고 있었던 점이 반성이 되기도 하고 여성의 최대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책은 비슷한 시대를 산 여성 예술가 둘을 묶어서 서로가 준 영향들을 멋진 제목으로 붙여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데,
1. 쌍벽 : 황진이/이매창, 2. 동경 : 허난설헌/허소설헌, 3. 회우(懷友) : 운초/죽향, 4. 대칭/ 김명순:김일엽
5. 석연 : 나혜석/백남순, 6. 대구 : 윤심덕/최승희, 7. 홀림 : 이화중선/김소희, 8. 반조 : 이월화/복혜숙
두 여성 예술가들의 어우러지는 그림을 소제목으로 지었는데, 어쩜 이리도 잘 어울리고, 작품들 하나하나가 깊은 사연을 담고 있어서 책에 푹 빠져 읽었다. 뿐만 아니라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해서 잘 보존된 기록들도 전무할텐데도 저자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을 상세하게 인용하고 친근하게 접근하고 있다. 아마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저자의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다 나열하기도 힘든 많은 참고문헌들 때문에라고 생각되는데, 어쨌든 속이 꽉찬 책 한권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하다.
보편적인 시각으로 볼때 이제까지 여성 예술가는 내 놓은 여자(p.258) 라는 경멸이 깔려 있었다. 그 나마 인정 받는 예술가는 가부장적인 든든한 울타리를 가진 여성이였고, 이도 저도 아니라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모든것을 버려야만 가능한 예술가들의 삶이였다. 그녀들이 얼마나 힘겹게 앞선 자들의 역할을 했는지는 보지 않아도 본것처럼 선명하다. 공유하지 못한 아픔이지만, 그네들에게 마지막으로 해 주고 싶은 말은,
당신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절대 가치를 위해 열정을 받친 정렬적인 생활인이였고, 예술인이였으며 창조자였다고,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진 재능과 재주로 아파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때문에 행복했을 꺼라고.
그러므로 더 이상 지난 슬픔에 묻혀 있지 말고, 그 슬픔을 놓아 줌으로써 자유롭고 제대로 평가받는 예술인으로, 굳이 여성이라는 접두어를 붙이지 않아도 되는 진정한 창조자로 평가 받아 거듭나기를 바래 본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아루(div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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