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자전거(432일 14,200KM 상하이에서 리스본까지)
김성만 지음
책세상
여행을 좋아하는데 여행을 떠나는 데 필요한 '돈'과 '시간'이 없을 때, 그 갈증을 해소시켜줄 제일 좋은 방법은 아마도 '여행서적을 읽는 것'이리라.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많고 많은 여행서들은 나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긴 하지만 두 종류로 나눠보려고 한다. 길지 않은 일정 속에서 일어났던 일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상세하게 담아내어 한 권을 채워낸 책, 그리고 길고 먼 여정 속에서 너무나 많은 경험을 했던지라 건너뛰기와 압축을 통해 한 권에 꾹꾹 담아낸 책. 이 책 <달려라 자전거>는 후자에 속하는 그런 책이다. 무려 432일(1년하고도 2개월이 넘는 시간)을 상하이에서 리스본까지, 그것도 제목 그대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여행한 대장정을 담아낸 책이니 말이다.
몇년 전 러시아 지역의 타타르스탄에 약 2주간 다녀왔을 때 난 매일매일의 일정과 느낌을 간략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이렇게 '기록'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그 때의 일들을 잊어버릴 것 같아서였다. 아마 이 책의 저자도 그랬을까? 그는 이 책에서 자전거 '풍만이'를 타고 함께 달려간 그 여정을 매우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그동안 주로 여자가 저자인 세심한 묘사와 풍부한 감성이 넘치는 여행서들을 많이 읽었었는데, 남자가 쓴 이 책에서는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땀을 뻘뻘 흘리는 듯한 느낌의 치열한 깨달음들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에 독특한 매력을 더하는 것이 '자전거' 외에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사진'이다. 이 책을 읽으며 어떤 곳에서는 여러 문단의 글 보다도 한 장의 사진에서 오히려 더 큰 감동과 깨달음을 느끼곤 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바로 파키스탄의 '훈자 계곡'의 풍경(P.210~211)이었다. '배낭여행 3대 블랙홀'이란 별명에 걸맞게 사진을 본 순간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해 있었고 한동안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나서는 미친듯이 그곳에 가고 싶어졌다. (이번에도 '돈'과 '시간'을 핑계로 그저 책을 뒤적이는 데 만족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 책에는 그렇게 보물과도 같은 사진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감성을 자극하는 멋들어진 문구나 배꼽잡는 에피소드를 기대했던 사람은 내심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힘차게 달려가는 자전거 바퀴 옆을 흩날리는 모래바람, 투박하면서도 한없이 진실된 깨달음은 이 책에서가 아니면 느끼기 어려운 감동이리라. 이 책을 통해 저자와 함께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자기 자신의 내면에 숨은 '그 무엇'과 마주하는 진솔한 시간을 가져보길 권하고 싶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노란지붕(realj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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