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무신왕
이수광
동아북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바람의 나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를 본적은 없지만 그 드라마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만화 '바람의 나라'의 열혈팬으로써 다른 장르에서는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몹시도 궁금하여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에필로그 형식으로 전장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는 주인공인 대무신왕-무휼의 모습으로 책이 시작되어서소설처럼 재미있을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대무신왕'은 많은 지식과 정보, 그리고 이야기로써의 가능성을 남겨준 책이다.
쳅터 10에 이르러서야 대무신왕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그 전에 고구려의 역사를 훑어주는 센스를 잃지 않았다. 단군조선부터 동북아시아의 맹주인 고구려의 개국역사까지 숨가쁘게 흐르는데 그 서술 방법이 조금 독특하고 신선하다. 이야기가 될만한 부분은 소설처럼 장면의 비주얼을 묘사하고 대사까지 넣었지만 지식이 될만한 부분들-즉 당시의 정세나 지리적인 상황, 인물 등은 정보적인 측면을 부각시켜서 서술하였다. 익히 들어온 단군신화나 주몽, 유리왕 등이 중국역사 속의 기록과 고증된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서술되었다. 유리왕이 21살 꽃다운 나이의 해명태자를 억울하게 죽음으로 몰아간 이야기조차도 너무나 객관적이고 냉철한 입장에서 전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안타까움은 결코 소설에 비해 약하지 않았다. 비슷한 사건들을 [삼국사기]나 중국의 역사 속에서 찾아내 언급해가며 비교해주곤 하는데 사이드적인 재미 뿐만 아니라 해명태자가 창에 찔려 죽었기에 그 지역을 '창원'이라고 한다는 정보들을 얻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릴때부터 총명함을 자랑한 무휼은 자라면서 강대국들과 싸워야 하는 나라의 숙명적인 상황으로 말미암아 뛰어난 지략가로 성장해 나간다. 17살의 나이에 부여의 대군을 물리치고 왕으로 인정받게 된 무휼은 고구려의 3대 대무신왕이 된다. (저자는 때론 삼국사기에 잘못 기록된 연대나 나이를 고쳐가면서 알려준다.) 주몽이나 유리왕에 비해 대무신왕의 인지도는 상당히 떨어지는 편인데 만화로 읽었던 낭만적이고 순정적인 측면이 부각되었던 매력적인 모습과는 또 다르게 대무신왕의 성정과 자애로움, 인간미에 반했다. 또한 개국때부터 갈등을 일으켜온 부여와 한나라와 벌이는 전쟁과 전략, 정치의 이야기는 대무신왕을 강한 전장의 활약가로 돋보이게 하는데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했을 정세에 고구려의 기초를 반석같이 다진 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장 안타깝고도 드라마틱한 사랑이야기로 알려진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이야기가 대미를 장식한다. 압록강 남쪽의 낙랑국의 편입이 여의치 않자 대무신왕은 외적의 침입을 알려주는 낙랑의 신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 신물을 없애기 위해 호동왕자를 낙랑공주와 정략결혼시켜 낙랑으로 보내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둘은 정말 사랑에 빠지고 낙랑공주는 자명고를 찢고 죽임을 당한다. 결국 대무신왕의 소원대로 낙랑을 치지만 호동왕자는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모함에 빠지게 되어 자결한다. 아들을 죽게 만든 유리왕의 대를 이어 호동왕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대무신왕의 이야기는 익히 들었는데도 아름다운면서도 씁쓸해졌다. 전제적으로 짜임새 있고 구성도 좋다. 군데군데 삽입된 김부식의 설명도 재미를 한층 더하고 무엇보다 패기와 바람의 나라, 고구려와 대무신왕을 만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왠지 우리의 역사라 그런지 자부심이 느껴졌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삐리리(tazzo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