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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매뉴얼

 




매뉴얼
롤라 제이 지음 | 공경희 옮김
그책

인상깊은 구절
언제든 혼란스럽고 힘들고 외로울때마다 매뉴얼을 펼쳐보렴. 아니 행복한 순간에도...


딸과 아버지의 관계는 특별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보편적으로 딸은 아빠를 이상형으로 생각하며 자라고 아빠 역시 딸의 재롱에 어쩔 줄을 모른다. 하지만 나의 기억 속에 아빠라는 존재가 없다면 어떨까? 어렴풋한 기억만 존재하고 아빠의 얼굴이 어떤지 사진으로밖에 본 기억이 없다면?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나만을 위해 남긴 편지를 읽게 된다면?

주인공 루이스는 5살 때, 아빠가 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아빠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루이스.

그러던 어느 날 12살 생일이 지났을 때 고모로부터 아빠가 남긴 <매뉴얼>을 건네 받는다. 서른 살 나이에 다섯 살 딸아이를 두고 저 세상으로 가야만 했던 아빠가 아이가 12살이 되던 해부터 매년 생일때마다 읽어볼 수 있도록 인생을 살아가는 법이 담긴 매뉴얼을 남긴다. 자신이 서른 살까지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루이스가 서른살이 될 때까지 살아갈 방법을 가르쳐 준다. 루이스는 아빠의 매뉴얼을 통해 아빠와 다시 만나게 되고 즐거운 순간이나 힘들고 지친 순간에 아빠의 매뉴얼은 루이스에게 큰 힘이 된다. 엄마가 재혼을 했을 때, 약20살이나 어린 동생을 갖게 되었을 때,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 잘나가던 회사에서 갑작스런 해고 통지를 받을 때...등 루이스가 서른 살이 되기까지 겪은 모든 일상에서 아빠는 매뉴얼을 통해 딸의 삶 속에 존재하게 된다.

내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은 아니지만 나도 한때 이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 내 딸이 하루하루 커버리는 모습이 아까워서 딸이 자라나는 과정을, 딸에게 매순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지로 남겨놓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아마도 시한부 인생이라는 제한된 상황이 주는 긴박감이 없는 탓일까. 만약 내가 앞으로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생각해보게 되니 의외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특히 제일 맘에 걸리는 것은 남편이 아니라 바로 아이였다. 바로 이런 느낌으로 루이스의 아빠가 매뉴얼을 썼을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찡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어디에선가 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고 내가 잘 되기를 바라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그 존재감이란 이루말할 수 없이 소중한 느낌이리라.

루이스의 마음 속에 아빠는 완벽한 남자로 자리잡는다. 언제나 온화하고 유머가 있고 자신을 한없이 사랑해주는 사람. 그래서 루이스는 더더욱 다른 사람, 특히 남자를 자신의 삶 속에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고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기를 주저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또 한명의 사람을 잃게 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런 루이스의 환상이 엄마에 의해 깨지면서 루이스는 서른 살의 생일이 그렇게 지나간다. 서른살 생일. 매뉴얼의 마지막 장을 차마 넘기지 못하는 루이스의 안타까운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장면에서 나 역시 매뉴얼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아빠와의 관계가 끝나버리지 않을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내가 그동안 의지하고 있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버리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말이다.

결국 12세부터 30세까지 19년을 보내고서야, 19번의 아빠가 보내는 메세지를 읽고 나서야 루이스는 진정으로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제대로 깨닫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슬픔으로부터 도망치거나 슬픔이 자신을 망가지게 놓아두지 않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이를 위한 매뉴얼을 만들기 시작한다. 루이스의 아빠는 그런 딸을 틀림없이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한편의 잔잔한 에세이와 같은 감흥으로 다가온 작품이었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오즈(flyo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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