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보이
이지민 지음
문학동네
성급하게 결론으로 먼저 치달은다면, 우리의 조선은 망하지도 않았고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보다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헤매던 매력적인 모던 보이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래서?
나는 왠지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이 소설의 '의미'가 무엇일까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아니 그것보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수 있겠니'라고 물어보는 의미안에 담겨 있는 '살아있음'에 나 혼자만의 의미를 부여해버린 것 같다.
모두가 당연히 알고있듯이 1930년대의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지배하에 있었다. 나라를 잃은 수많은 청춘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였고, 그 당시를 배경으로 한 모든 이야기에는 조국을 위해 몸바친 청춘들뿐이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나라찾기 보다 더 힘든 애인 찾기에 전념하는 로맨티스트 모던 보이 이해명의 나날은 선뜻 평범하게 받아들이기 힘든것이었다.
그가 찾아 헤매는 조난실은 조난의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하기 위한 투사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초반에 나는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로맨티스트 모던 보이 이해명은 조난실을 찾아 헤매고 끝내 그녀를 찾아 행복한 연인 생활을 이루는 것이 바로 해방된 독립 조선의 미래를 은유하는 것이다! 라는 상상 말이다.
하지만 정말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간다면, 이건 평범함을 넘어서 누구나 한번쯤 습작처럼 끄적여보는 이야기글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은 하나도 없다. 거짓말이 난무하고 배신과 배신이 더하여지고 결국 밝혀진 진실이라는 것은...그것은 뜻밖의 사건이 되는 것이며 미리 알면 재미없어지는 것이겠기에 그저 그렇게 '밝혀지는 진실'에 담긴 뜻이 참으로 오묘하다는 것만 이야기해야겠다.
식민지 조선에서, 나라를 잃어버린 슬픔 속에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청춘들의 삶은 지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그들이 오로지 '사랑'만을 외쳐대는 로맨티스트라고 해서 그들을 비난하지도 못할 것이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는지의 물음을 먼저 던져놓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해서인지 변심하고 떠나버린 애인을 찾는 것이 훨씬 더 비장하고 결연한 느낌을 갖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변심한 애인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사실들, 거짓말에 뒤덮힌 그녀의 이야기들이 하나씩 그 거짓의 껍데기를 벗으며 밝혀지는 진실은 로맨티스트 모던 보이 이해명의 마음 뿐 아니라 책을 읽어나가는 나의 마음까지 혼란스럽게 해버린다. 변심한 애인, 거짓말만 일삼았던 그녀 조난실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이해명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그래서 연애소설인것인가? 식민지 조선에서 나라를 찾는 것보다 애인을 찾는 것이 더 어렵다,라는 말의 의미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그녀를 찾는 것으로 해피엔딩, 해버리면 되는 것인가?
이 이야기는 내가 지금까지 접해왔던 식민지 조국의 애국청년들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다. 무장독립 항일 투사, 식민지 조국의 해방을 위해 목숨도 기꺼이 내던지는 독립투사가 변심한 애인의 남편이라는 사실이 더 강조되고 무장투쟁의 중심이 이십세기모던이미지댄스구락부로 희화화되고 있으며, 조선총독부에서 일하는 이해명이 빈둥거리며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조선총독부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역설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웃음을 불러 일으키면서도 왠지 얄밉지 않다. 결코 비웃기 위한 비유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로맨티스트 모던보이 이해명은 변심하고 떠나갔던 조난실을 찾고 그녀의 거짓말과 진실을 밝혀내는데... 그는 그녀를, 그녀는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여전히? 아니, 더욱 더?
결국 이해명은 모든 젊은이들이 꿈꾸는 소망을 이루어 기뻐한다. 그는 그의 여자친구가 원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여자친구가 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지? 진실은 그 안에 있다.
한가지, 이 책에 대한 나의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그녀 이지민의 유쾌한 표현에 낄낄거리며 이 책을 읽었다. 일본경찰의 조선어 교본에 실려있다는 독립투사들의 고문 장면을 집어 넣으며 이해명의 일본인 친구 신스케가 독립투사의 역할을 맡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그저 한번 해보고 싶었을 뿐,이라는 이유를 너무 쉽게 당연한 이야기처럼 하는 그녀의 글솜씨가 무척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일본인 친구의 '대한독립 만세'라는 외침에 놀래는 건 오히려 이해명이고, 역할을 바꿔 해보자는 제안을 소심하게 거절하는 것은 조선인 이해명임을 보여주는 아이러니가 재밌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그런 이해명을 미워할수가 없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일삼으며 애인을 등처먹고(?) 배신한 조난실이나, 조선어 교본에 나온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일본인 친구때문에 흠칫 놀라는 이해명이나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는 건 이 책을 읽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매력에 너무 큰 기대를 해버리면 오히려 그 매력을 보지 못하고 놓칠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잊으면 안될 일.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루피(franciscus)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0.1그램의 희망 (0) | 2008.10.21 |
---|---|
양들의 낙원 늑대 벌판 한가운데 있다 (0) | 2008.10.21 |
레이스 뜨는 여자 (0) | 2008.10.21 |
매뉴얼 (0) | 2008.10.21 |
시편 영어로 통째 외우기 (0) | 2008.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