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지음
한겨레출판 2010.03.26펑점
살아가는 건 '나부끼는' 일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은 늙고 물건은 마모되고 숲은 쓰러진다. 때론 쓸데없는 분노 때문에 상처받고 세계와의 불화 때문에 몸이 상한다. 상처는 계속 쌓여가지만, 그러나 허공을 보지 않고선 그 '해답'을 구할 수 없는 것이 사람살이다. 그러니, 나는 노래를 부른다. 나이 들면서도 여전히 '상처'를 다 부리지 못하는 내게 들려줄 노래는 이것이다. "그 해답은 친구여, 바람 속에 있다. …… 바람 속에 나부끼고 있다." (본문 중에서)
사직서를 냈다. 힘들었다. 같이 일해야 할 사람들과의 틈이 까마득했다. 몇 사람 몫의 일을 혼자 했다. 밤이 깊도록 회사 일에 붙들려 있으면서, 나는 그들이 미웠다. '나 참 더러워서!' 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시원스럽게 사직서를 냈지만 앞길이 걱정이었다. 어둑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날이 밝아올 때는 꺽꺽 게워댔다. 더럽다. 더럽다. 구시렁거렸던 것도 같다. 아내는 문을 잠그고 조용했다. 외로웠다.
나는 길 잃은 개처럼 황망하게 세상 가장자리를 기웃거렸다. 어디에도 나를 받아줄 곳이 없어 보였다. 까짓, 막일이라도 할까. 나는 갑자기 세상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처럼 불안했다. 그러면서도 아내와 밥을 먹고 개를 산책시키고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개그맨의 연기에 큭큭 웃어댔다.
진짜, 진짜, 산다는 것이 뭔가. 까맣게 타들어가는 가슴은 허공에 연기 같은 물음을 피워올렸다. 어쩌면 그건 물음이 아니었다. 허공에, 우주의 품에 암팡지게 발길질을 해댄 것이었는지 모른다. 내 삶에, 나 자신에 행패를 부리고 있을 때 나는 이 책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의 제목을 발견했다. 산다는 것은. 정신이 와짝 들었다. 그 짧은 문장이, 불완전한 문장이 나를 부끄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박범신 작가의 글은 소설 몇 편, 그리고 우연히 읽었을 몇 편의 수필 정도가 전부이다. 게으름 때문에, 최근 연재되었던 '개밥바라기 별'은 읽다 끝을 보지 못했다. 기억나는 글은, '흰 소가 끄는 수레'라는 소설뿐이다. 내용이 전부 기억나지도 않는다. 아들이 차를 훔쳐가 끙끙대던 아버지가 떠오르는데, 내 기억이 맞는가도 모르겠다. 재미있었다는 기억만 또렷하다. 그는 지난 한때를 "인기작가였을 때"라고 수식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인기작가라는 것을 실감한다. 블로그 방문자 수와 수많은 덧글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여전히 청년작가이다. 선생의 생애를 한마디로 축약해서 말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출연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진행자의 질문을 받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내 인생은 '작업'이었지요. 연애할 때 상대편을 유혹한다는 그 작업이요. 요컨대, "고통과 황홀" 속에서 그의 작업, 삶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은유로서의 '작업'뿐 아니라 실제로 그는 작업(作業)을,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마당에 있는 꽃과 나무와 채소를 가꾸는 것을 즐긴다. 마당에 앉아 꽃에 취해, 나무에 취해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글에 자주 나온다. 그 모습이, 꼭 신선 같다고 생각돼서 슬쩍 부럽기까지 하다.
나는 여러 해 늙는 것이 두려웠다. 어떤 땐 너무 두려워 실신할 만큼 술을 마시기도 했고, 또 어떤 땐 수천 미터 높이의 낯선 산야르 죽을 둥 살 둥 헤매기도 했다. 갈망과 염원은 나날이 깊어졌지만 내가 가진 것은 두려움뿐이었다. (본문 중에서)
나의 '짐승(기르는 애견의 애칭)'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아직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한 달 뒤면 굿빠이) 직원을 보았다. 우연한 만남이었다. 우리(짐승과 나와 아내)가 서 있는 맞은편 도로에 그가 있었다. 신호가 바뀌고 그가 이편으로 걸어왔다. 나를 향해서는 아니고. 걸으면서는 아내에게 그에 관한 짤막한 소개를 했다. 형식적인 눈웃음이 허공으로 증발하고 우리는 서로 갈 길로 향했다. "굉장히 화려하네. 꽃무늬 원피스." "어. 평소에도 가슴에 꽃 달고 다닌다." 큭큭. 아내와 그런 대화를 주고 받다가 나도 모르게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저들과 나는 그저 갈 길이 달랐을 뿐이다. 잠시 엇갈렸을 뿐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그들이 측은하기도 하고 아름답게도 보였다. 내가 그들을 향해 품었던 불만, 불안, 미움이 여직원의 꽃무늬 치맛자락과 함께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나마 속이 편안해졌다. 언제 또 무슨 일로 속이 뒤집히고 불이 붙을지 모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랬다.
사람처럼 추한 것이 없고 사람처럼 독한 것이 없고 사람처럼 불쌍한 것이 없고, 그리고 사람처럼 예쁜 것이 없다. 모든 게 영원하다면 무엇이 예쁘고 무엇이 또 눈물겹겠는가. (본문 중에서)
사람이 미워질 때, 그보다 더 내가 미워질 때 나는 박범신 작가의 얼굴을 떠올릴 것 같다. 책 표지 안쪽, 프로필 사진이 인상적이다. 박범신 작가는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 거울 앞에서 거울 속의 '그'를 쳐다보고 있다. '그'에게 조용한 미소를 보내고 있다. 거울 속의 '그'도 거울 밖의 작가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다. 선생의 미소는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도 보인다. "고통과 황홀"의 시간을 거쳐온 그의 얼굴이 거기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거울 속의 '그'를 꺼내주고 싶다는 이상한 충동이 아주 잠깐 들었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연민'이야말로 평생 작가로서의 내겐 '적'이었고 '감옥'이었다. 우주로 날아가 별이 되기 전까지는 '나는 자유인'이라는 내 말엔 반 이상 '뻥'이 섞여 있다고 보면 된다. (...) 요즘은 매일 온갖 군데가 계속 아프다. 그래도 괜찮은 척 만나자는 사람을 여전히 만나고 심지어 건네주는 술잔을 거절 못 하고 받는다. 상대편이 심심하고 쓸쓸할까 봐 일부러 내 스스로 원샷 원샷! 할 때도 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남몰래 의사의 처방에 따른 안정제와 약을 수돗물로 삼킨다. 내가 아내에게, 당신에게, 세상에게 '자유인'인가. 자, 이제 나는 어디로 어떻게 떠나면 되는가. (본문 중에서)
그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별로 없다. 언제인가 텔레비전에서 그가 이국의 산길을 걷는 모양을 비춰주는 것을 보고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저 사람 멋있다, 저렇게 살면 늙지도 않겠다고 생각했다. 박경리 선생의 시집에서 그에 관한 시를 읽고, 우물처럼 맑고 깨끗한 눈망울을 가진 소가 떠올랐던 일도 있다. 그분, 박범신 작가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고운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면에서는 기이한 동질감 같은 것도 느껴져서 얼굴 마주하고 술 한 잔 기울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번에 블로그에 가서 보니까, 덧글에 독자들과 '번개'도 하시는 것 같던데, 나도 언제 그 번개 모임에 슬쩍 흘러들어볼까. 그때 뵈요. 선생님.
[출처] [서평/오늘의 책콩] 산다는 것은 (북카페 책과 콩나무) |작성자 정신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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