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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스카라무슈

 왜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스타워즈의 그 유명한 대사 “I'm your father."가 생각이 난 건지 모르겠다. 알려진 바 없지만 혹시 조지 루카스는 젊은 시절 이 『스카라무슈』를 읽고 영감을 받았던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루크 스카이워커와 앙드레 루이 모로가 성장하는 과정에도 닮은꼴이 보인다.


라파엘 사바티니의 1921년 작품 『스카라무슈』를 접하기 전까지는 ‘스카라무슈’라는 단어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스카라무슈’란 극에서 항상 까만 옷을 입고 기타를 들고 나와 비굴하면서도 허풍을 떠는 익살꾼 역을 일컫는 말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세상의 눈을 피해 유랑극단에 들어가 스카라무슈 역을 행하였기에 소설의 제목이 되기도 하였고 마치 인생을 즉흥 연기하듯 즉흥적으로 살고, 세상을 조롱하고 비웃는 스카라무슈처럼 항상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주인공 앙드레 루이 모로를 한마디로 아주 적절하게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프랑스 혁명을 예고하는 시민과 계몽정신의 대두는 지방 변호사 앙드레 루이 모로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기는 하였지만 동조하게까지 만들지는 못했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냉소적인 시선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친우, 빌모렝이 다쥐르 후작과의 결투에서 목숨을 잃자 빌모렝을 대신해 제3계급을 대변할 것을 맹세한다.

그 일환으로 우선 빌모렝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기 위해 파리에 갔다가 즉흥적으로 연설을 하게 된 앙드레 루이는 자신에게 대중을 설득하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연설은 민중이 단합하고 봉기하는 단초를 마련한다. 그 일로 앙드레 루이는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앙드레 루이 모로가 자성하기까지가 1부(시골 변호사), 다쥐르 후작의 영지에 불법 침입한 비네 극단을 현란한 혀놀림으로 위기에서 구해준 대가로 입단헤 극작가로ㅡ 배우 스카라무슈로 활약하는 게 2부(연극배우), 미네 극단을 떠나 펜싱 마스터 밑에서 수련하며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다시 시민운동에 발을 담게 되는 이야기가 3부(검객)로 나뉘어 진행된다.

앙드레 루이 모로라는 남자의 활극은 프랑스 정치사 한복판에 뛰어들어 격변을 겪는 한 인간의 이야기보다는 남자들의 로망을 충족시키는 쪽을 택했다. 냉소적이고 차가워 보이지만 열정을 품은 남자, 똑똑하고 언변에 능하며 자신이 처한 어떠한 환경에서도 최고 자리를 차지하는 남자, 앙드레 루이 모로의 모습이야말로 모든 남자들이 꿈꾸는 모습 아닐까.

변화무쌍한 앙드레 루이의 모험 덕에 500쪽이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이 술술 읽힌다. 100년 전 문체가 까끌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제법 현대적이고 세련되기까지 했다. ‘고전적인’ 전지적 작가 시점이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중간 중간 당황하겠지만 그게 이 책의 재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까지다. 지금의 무협지를 떠올리게 하는 ‘장편활극소설’ 『스카라무슈』의 한계다. 태생부터가 스카라무슈이기에 당연한 결과일까? 재치 넘치는 언변으로 무장한 한 편의 무대가 휙하고 지나간 느낌. 빌모렝을 대신하겠다는 웅장한 포부는 용두사미처럼 어느새 꼬리를 내리고 출생의 비밀로 뒤통수를 맞은 것이 못내 씁쓸해진다.

작가 라파엘 사바티니는 당대를 대표하던 모험 소설 작가라고 한다. 대표작으로는 『스카라무슈』와 『시호크』 『블러드 선장』이 꼽히는데 이제야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같은 제목의 1940~50년대 할리우드 영화! 스펙터클 대작으로 만들어졌다니 당시 라파엘 사바티니 작품의 인기를 어림짐작하게 한다. 그의 작품이 지금 다시 만들어진다면? 글쎄 《캐리비언의 해적》 정도로 만들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어림없어 보인다.

(글_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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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사바티니 지음
김효정 옮김
프로메테우스
2008년,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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