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산은 없다(2008 대표에세이)
김서령 지음
에세이스트
인상깊은 구절
한 개의 구슬에 빛이 들어오면 천 개의 구슬이 동시에 빛을 발하듯 어머니는 우리의 가슴에 저마다의 빛으로 살아났다.
수필가 300인이 2008년을 결산하여 뽑은 대표 에세이 42편, 이 책을 만든이는 "수필은 잡탕이어야 한다. 잡식성이어야 한다."라고 과감하게 말했다. 수필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감히 독자들에게 '오늘의 수필'에 대한 평가를 맡긴다고 자신있게 내뱉었을 때 나는 반신반의했다. 세상이 아직 살만하다고, 아름답다고...그런 감상, 그런 마음, 글에서 얻어가는 것이 싫어, 에세이라면 질색하며 보낸 10여년. 그도그럴것이 짧은 독서경험으로 읽은 지난 시절의 에세이들은 이것도 수필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실험적인 느낌, 혹은 지리멸렬하고 촌스러운 감상에 젖게 하거나 소구범위가 좁다는 편견만 남겨주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좋은 단편 영화는 아주 가끔 만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얼마나 작은 세상을 살고 있었던가. 나도 모르게, 교만하게도 에세이의 범위를 소소한 일상으로 한정지어 버리고 나는 좀 더 큰 그릇이라고, 애써 자위하며 멀리하던 시간들이었다. 재미라도 있어보자, 하고 집어드는 소설책. 투쟁하는 마음으로 고르게 되지만 쉽게 포기하거나 적용시키지 못하 낙담하는 자기 계발서...그리고 지식의 지경을 넓혀주겠다고 자부하는 수많은 서적들...
그것들에 싫증이 나서가 아니었다. 에세이의 가치가 발견되고 내 마음에 담기게 된 것은, 이 책을 만나면서부터라고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약산은 없다>를 가득 채운 4~5페이지 남짓이 에세지 42편은 부드러운 칼을 휘두르며 내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르고, 꼬챙이같지도 않은 것이 요상하게도 내 마음을 살살 후펴팠다. 형식에도, 소재에도 그 어떤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써내려간 글들 사이에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려니 내 마음대로 한정짓고 폄하했던 그동안이 생각나 살짜쿵 미안한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마음에 여러개의 창문이 생겼다. 자연과 일상을 보며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가슴이 저릿해지는 창문, 떠올리기만 해도 이상하게 설레이는 사람과 물건에 대한 조각들, 그 조각들이 모여져서 이루는 오색 찬란한 스테인드글라스...그 창들을 통해 들어온 빛은 구석구석 내 마음에 쌓인 먼지들까지 비춰주니, 책도 읽고 마음 청소도 하고 일석이조다. 누군가에겐 잊혀진 과거와 아픈 상처가 누군가에겐 좋은 글감이 되고 진심을 전달하는 소재가 되니...부럽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고, 흠없는 인생도 없겠지만 그 연약한 부분까지도 깊은 혜안과 통찰을 담아낸 글로 표현해내니...그것이 에세이의 힘이고 매력이 아닐까 싶다. 작가들은 그렇게 한 번 되짚어보고 나면 슬펐던 일도, 기뻤던 일도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사유하고 곱씹고, 결국엔 깊이 행복해지겠지. 고맙다. 그 행복을 함께 나눌 수 있게 해주어서. 저마다의 가슴에 빛으로 살아나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들,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볼 수 있는 시선들, 살아있는 한 희망을 버릴 수 없다는 사람들...<약산은 없다.>는 그렇게 잊혀질 수 없는 인생의 조각과 단면을 모아 멋진 퀼트를 만들어냈다.
수필과 나 사이에 있던 거리감이 손잡고 동행해준 42편으로 하여금 완전히 좁혀지고나니 이제부터는 찾아 읽어야 하나...하는 기분 좋은 욕심과 설레임이 생긴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삐리리(tazzo98)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럽 도서관에서 길을 묻다 (0) | 2009.06.01 |
---|---|
그렌델 (0) | 2009.06.01 |
망고피리 만들기 (0) | 2009.06.01 |
상처주지 않는 따뜻한 말의 힘 (0) | 2009.05.27 |
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서 (0) | 2009.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