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
김만선
갤리온
몸은 유배할 수 있어도 어찌 마음까지 유배할 수 있으랴
사극이나 역사소설을 즐겨 읽는다. 실제 있었던 사실이라는 것도 흥미롭고, 비록 드라마나 소설이긴 하지만, 옛 조상들을 만난다는 자체가 설레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리로 달려가서 만나 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나는 이렇게 대리만족을 느낀다. 사극을 보면 유배를 떠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게중에는 정말 잘못을 저질러 유배를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정치적 이유로 억울하게 유배를 가게 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사극을 즐겨봤으면서 유배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것 같다. 그저 억울하게 유배를 떠난 사람들을 볼때면 안타깝고 씁쓸하긴 했어도 유배를 떠난 사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거나, 유배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더랬다. 그래서 <유배>라는 책을 봤을때 읽어보고 싶었다. '권력은 지우려 했고, 세상은 간직하려 했던 사람들'이란 문구도 내 마음을 움직였던것 같다.
책은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고, 이책에서 유배지에서 만난 사람들 22명을 만나게 되었다. 사극이나 역사소설에서 많이 접해본 김정희, 송시열, 정도전, 조광조, 정약용 등도 만날 수 있었고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인물 이광사, 조정철, 조희룡, 윤선도 등도 만나게 되었다. 이미 역사소설이나 사극에서 많이 접해본 인물이라 해도 역사속에서 그의 업적이나 행동만 주시했지, 유배지에서의 생활이라던가 그곳에서의 생활상에 대해 들여다보지는 못했기에 익숙한 이름도 그렇지 않은 이름도 유배지에서 만나는 그들은 새롭게 다가왔다.
책을 통해 유배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유배란 단순히 죄를 지은 사람을 멀리 귀양보내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유배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치범으로 단죄가 된 유배인은 군왕의 사면과 권력의 변화, 정세의 변동이 없는 한은 유배지에서 귀향할 수 없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사형 다음가는 중벌이라고 하는데 사실, 난 이 책을 접해보기 전까지만 해도 사형만 아니라면 유배생활도 그리 나쁘지 않다, 여겼기에 참 부끄러웠다.
책을 통해 유배인의 성품, 유배를 가게 된 역사적인 이유, 유배지에서 있었던 일, 그곳에서 남긴 명작이나 시등 많은 것에 대해 들여다 보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점은 유배를 떠났다고 해서 모두다 힘들어 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유배가 비록 큰 시련이긴 했지만, 정약용은 유배생활을 하면서 <목민심서>를 남기기도 했고, 손암은 유배생활을 하면서 지역민들의 도움을 받아, 서남해안에 서식하는 155종의 물고기와 해산물을 채집, 기록한 <자산어보>를 남기기도 했다. 또한, 윤선도는 <어부사시사>등의 주옥같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 너무나 힘들었을 시기에 그 힘듬을 이겨내고 창작과 몰두에 힘쓴 유배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책을 읽으며 유배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유배지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도 들여다 보았지만, 사진과 함께해서인지 유배지도 기억에 많이 남았다. 마치 제주에 가면 추사가 있을것 같고, 정의현에 가면 정헌이 있을것만 같아 사진을 한참이나 바라봤더랬다. 중간 중간 사진이 많이 실려 있어 참 좋았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유배지를 찾는 독자들이 있다면 더 큰 바램이 없겠다고 했는데 아마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나처럼 유배지를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유배지를 보면서 그곳 풍경을 감상하는 곳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배인들을 떠올리며 묵념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것이리라.
이 책을 통해 22명의 유배인을 만나면서 그들과 부쩍 더 친해진 느낌이다. 특히, 정헌 조정철과 정암 조광조의 이야기기 기억에 남는다. 정헌 조정철은 유배지에서도 애틋한 사랑이야길 들려주어 가슴이 짠했더랬다. 죽음이 갈라놓은 사랑과 슬픈 운명은 너무나 애틋했고, 아련히 내 마음을 적셨다. 그리고 조광조는 전설로 전해지는 그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단순히 유배지에서 사약을 먹고 죽은걸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의 죽음과 관련해 능주에는 아직까지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에 의하면 당시 형을 집행한 군졸이 정암의 목을 칼로 내리쳤으나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심지어는 한번 잘려 나갔던 머리가 다시 몸에 붙고 또 내리쳐도 다시 붙어 아예 재를 뿌려 머리가 다시 몸에 붙게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3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조광조는 할일이 너무 많아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전설이 참 흥미로우면서도 짠한 여운을 남긴다.
유배지에서의 삶, 그리고 유배인들을 만났던 시간, 그들이 내게 전해준 그 여운이 참으로 오래갈것만 같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별이(rubiya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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