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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정치를 사랑하다


 

정치를 사랑하다

샐리 베델 스미스 지음 | 김태훈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2009.07.29
펑점

지난 4월에 방영한 드라마 <시티홀>에서 주인공 차승원은 이렇게 말했다. "난 대통령이 되고 싶고, 대통령이 되면 내 아내와 춤을 출겁니다. 저와 춤추시겠습니까?" 여자들이 받고 싶은 최고의 프로포즈가 아닐런지. 두고두고 또 봤지만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정치인이 차승원처럼 멋질 수는 없는 데다가 시청의 말단직원이 시장이 되는 일 따위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으니. 결론 뻔한 사랑이야기에 정치코드를 버물렸다는 것 빼면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드라마에서 조국(차승원)이 신미래(김선아)에게 프로포즈하며 춤추는 장면에서 번뜩 떠오른 사람 역시 빌과 힐러리, 그러니까 클린턴 부부였다. 극중에서 대기업 따님이자 정략결혼을 약속한 고고해(윤세아)는 신미래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변해가는 조국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난 힐러리같은 인내심은 없거든요." 미국 정치역사상 유일하게 지도자의 자리를 반반씩 차지했다 해도 과언아닌 부부. 성격이나 리더십, 사람을 다루는 태도 등에 있어 서로 물과 기름처럼 달랐지만 정치에 있어서만은 목표가 같았던 애증의 부부. 임기기간 중 어느 정부보다 떠들썩한 스캔들을 배출했던 이들이 바로 빌과 클린턴, 즉 빌러리다.

 

[정치를 사랑하다]는 가정과 정치, 두 영역을 함께 한 빌과 힐러리의 재임시절을 서술한다. 대선을 준비하던 때를 시작으로 당선과 첫 번째 재임기간, 그리고 재선 후와 두 번째 재임기간 중 터진 치명적인 스캔들, 그로인한 탄핵과 사임요구, 임기를 마칠 때까지를 담는다. 당시 클린턴 부부의 가장 가까이에 있던 이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인터뷰를 근거로 만들어졌다해도 과언 아니다. 저자는 기존 인터뷰나 기사는 물론이고 미공개된 자료까지 참조했다고 털어놓는다. 정말이지 빌의 정치활동에 힐러리가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는지 너무도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 클린턴 정부의 대통령이 둘이 아니었나 싶기까지 하다. 빌이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라면 힐러리는 냉철하고 정확했다. 빌이 인간적인 대화와 농담으로 에둘러 목표에 접근하는 스타일이라면 힐러리는 철저한 준비 끝에 결론을 내린 다음, 회의에서 말할 내용을 미리 준비해놓고 발언하여 결론을 몰아가는 스타일이었다. 때문에 회의 참가자들은 아무도 힐러리의 의견에 반박하지 않을만큼 힐러리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빌은 주요정책들을 힐러리에게 직접 맡겼고,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면 일을 한없이 미루거나 힐러리에게 떠넘기는 식의 결정으로 얼버무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임기 초반 자질에 대한 비판도 많았지만 빌 특유의 넉넉함과 핵심을 꿰뚫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것들은 빌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르윈스키와의 섹스스캔들은 세계적으로 떠들썩했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르윈스키가 정말로 빌을 사랑했는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빌에게 접대하고 자신의 몫을 챙기기위해 고군분투했는지 분간이 힘들 지경이다. 빌이 관계를 끝내려 하는 순간이면 르윈스키가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항상 무언가를 요구하는데 이해하기가 힘들다. 더한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외도를 청산하지 못하고 끝까지 끌고가는 바람에 가정에서의 도덕성 파탄은 물론, 정치생명에까지 위기를 몰고 온 빌에게 있겠지만 결국 가진 게 많은 사람이 잃는 것도 많은 법이라는 진리를 재확인시켜주는 셈이다. 클린턴 정부가 막을 내린지 10년이나 지났으니 새삼 논의할 가치가 떨어지는 부분이긴 하지만 빌의 외도를 직접 겪어야 했던 힐러리와 그들의 딸 첼시의 고통을 감히 짐작할 수 있을까. 대담한 대처를 했던 힐러리의 대처법을 오로지 남편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지 않는다 해도 가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이룬 것을 지키기 위해 여자로서 가장 치명적인 부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용기는 단순히 용기라고 보기에 애처로운 점이 많다. 보통 여자들에게는 절대 힐러리같은 인내심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클린턴 부부가 '함께 또 따로' 방법을 고수한 재임기간 내내 이룬 것들과 이루지 못한 것들은 무엇일까? 오바마가 아니라 힐러리가 백악관에 들어갔다면 지금 클린턴 부부의 관계는 어떻게 재정비 되었을까? 재밌는 상상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기보다 단순히 빌의 성적충동에 의한 스캔들이었기에 그나마 끝까지 임기를 채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치 외에도 그들을 강하게 이어주는 끈이 있었으니 딸 첼시였다. 딸을 스탠포드로 보내며 걱정하고 기숙사까지 짐을 날라주며 보통 부모들처럼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며 국가의 지도자이면서도 세상 겁날 것 없이 살았던 감성주의자 빌과 그의 모든 것을 인내하며 때론 그의 위에서 때론 그의 옆에서 도왔던 힐러리의 엄마다움이 새삼스러워 보였다. 빌의 외도를 감싸안는 척했든 진짜 감쌌든 그로인해 힐러리의 정치사랑은 증명된 셈이니 비록 도덕성에 커다란 치명타를 입었을지라도 여자로서 당당한 그녀는 멋졌다.

 

서로 많이 달랐지만 정치에 대한 애정만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같았던 빌과 힐러리에게서 부부의 정신적, 정서적 기반은 과연 사랑에서만 나온다고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사랑이 좀 덜해져도 무언가를 향한 열정이 보이지 않은 끈으로 부부를 묶어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 정치에는 훨씬 더 크고 깊은 권력의 힘이 도사리고 있으니 빌과 클린턴의 진정한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예나 지금이나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미국 대통령들은 한국보다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당선된다. 그래서 클린턴 부부는 여전히 젊다. 자신의 힘으로 다시 한 번 재도약 하려했던 힐러리의 원동력 또한 빌에게 충고하고, 정책을 집행하고, 사람을 다루던 예전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일테니 재임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들의 다음 행보는 늘 주목할 만 하다. 문득 한국에서도 젊은 지도자가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에 따라오는 돈과 권력에만 물들지 말고 정치를 정말로 사랑하여 온 생을 바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올 날은 과연 언제일까. 비록 건장한 미국사에 스캔들로 얼룩진 정부와 가정사를 남겼을지라도 클린턴 부부가 추진했던 복지와 의료를 비롯한 각종 체제들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그들의 정치 사랑만은 한 톨의 거짓 없는 진실이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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