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의 철학 공장
박승억
프로네시스
먼저 여쭈어 보아야 할 것 같다. "현대 철학씨, 무고하신지요?" 되돌아 오는 대답 대신 찰리가 얼굴을 카메라 가까이 들이댄다.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씨. 그가 동그래진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뭔가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 현대 철학은 흔히 위기라고 한다. 철학이 확실성의 위기를 겪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의 시대적 흐름의 한 개울을 건너는 것 쯤이라고 보기도 한다. 무엇이 맞는 건지 장담하기는 어려우나, 내가 느끼기에도 현대 철학은 뭔가 불확실하고 불명확한 면이 있다. 그 이유를 어느정도는 적절하게 풀어내고 있다. 시대의 요구가 과학과 철학을 적절하게 취합하였기 때문이다.
책 제목과 관련한 권고에서 저자는 밝힌다. 본인은 그리 재치있는 만담꾼이 못된다고, 그러니 유쾌함이나 재미있음은 기대하지 말라고. 독자도 현대 철학의 위기와 새로운 모색을 읽음에 있어 최상의 재미를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 점에서 저자는 어찌보면 괜한 걱정을 한 셈이고 더불어 생각보다는 재미있다는 생각을 갖게끔 유도한 셈이다.
재미의 요소를 살펴 볼까. 어찌보면 가시적으로 안잡히는 어색한 철학을 친근한 찰리채플린의 등장으로 좀 더 바짝 다가설 수 있게한 점을 들 수 있겠다. 찰리가 그저 모던타임즈의 웃기고도 슬픈 아저씨인줄만 알았는데 그 밖에도 참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으며 그 출연 영화의 대부분을 직접 감독했다는 사실이 신기하였다. 4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든 찰리는 현대 철학의 자화상이다.
모던 타임즈가 나온 1936년을 날짜 감각이 둔난 나조차도 기억을 할 정도면, 이 책에서 그 연도는 중요한 의미를 지님이 분명할진데. 현상학의 훗설이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이란 책을 펴낸 해이기도 하고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의 기존 입장을 정면으로 뒤바꾼 '철학적 탐구'를 지필하기 시작한 무렵이기도 하다. 나치 정권이 무력으로 라인란트를 점령한 시기이며 더불어 피카소의 '게르니카'나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같은 작품들의 무대인 스페인 내전이 격화된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대는 철학이 혼란의 현실에서 방황하고 일상에서 유리된 때이다. 계몽적 이성이 인간의 삶에 확실한 방향을 제시해주리라는 믿음이 붕괴된 상황이다. 근대 과학이 형이상학이나 가치를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철학의 우위에 서게 된 시대이기도 하다.
새로운 모색 편에는 현상학, 실존주의, 논리실증주의, 분석철학에 대하여 나온다. 역시나! 쉽지 않다.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이론과 후기이론의 상이점, 하이데거의 시적 언어를 통한 진리 해석, 콰인의 번역 불확정성, 버클리, 윌슨, 오컴의 면도날 등은 언제나 고개를 갸우뚱이게 하는 부분이다. 다행인 것은, 그 중에서도 오컴의 면도날은 좀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오컴의 면도날을 환상 제거의 도구이자 이 세계의 불필요하게 많은 존재자의 확대에 대한 경계라는 말로 압축해 본다.
철학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가치를 객관화 하려고 하는 과학주의적, 수학 증명의 태도에서 비롯된 면도 어느정도는 있는 것 같다. 힘들지 않은 학문은 없다. 더구나 형이상학과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던 철학은 오죽할까. 이런 철학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주는 면이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이다. 하지만 본적 없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이를테면 '위대한 독재자', '황금광 시대', '살인광 시대', '시티 라이트')이 계속 나오면서, 혼란스러운 철학의 행로에 더 큰 혼란을 가중 시킨 면이 적잖이 있었다. 더불어 와닿는 희망이 아닌 억지로 이끌어낸듯한 happy ending에는 약간의 어색함을 짓게 하였다. 과학과 철학의 화해가 정말로 희망의 귀결점 어딘가에 자리 잡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남겨준다. 찰리씨에게 다그쳐 묻는다.
"현대철학, 파괴가 아닌 새로운 시작인 거 맞죠?"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쏘심이(nan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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