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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쿨하게 한걸음-서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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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세상의 모든 그녀들의 이야기]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늘어가는 것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감 부족이다.  지금의 길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하며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보며 달려왔는데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멋있고 폼나게 살아가는 사람은 왜 이리 많은지. '그래, 난 아직 젊어! 나는 아직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하려해도 주위의 시선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에 자꾸만 움츠러드는 것은 왜일까. 한 번 마음먹고 떠나려 해도 걸리는 것은 돈에 시간에 한 두가지가 아니고,  서로 좋아서 시작한 연애임에도 그 과정이며 끝이며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다. 감정과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결국에는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리고, 꼭 결혼은 해야 하나, 이대로 혼자 살면 안 되는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나, 혹은 다른 누군가들. 나는 20대 중후반에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머리를 감싸쥐고 있지만, 주인공 연수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  많다고 하면 많고, 적다고 하면 적은 그녀 나이 서른 셋.

#연수는...

요즘들어 불안정하게 돌아가는 회사에 다니는 연수는 평범한 30대 싱글이다. 얼마 전에 사귀던 K와 헤어지고, 집안에는 말도 못한 채 이리저리 눈치만 보며 하루하루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회사마저 합병이 되네, 누구누구는 벌써 다른 회사를 구해 나갔다네 하는 불안한 소문이 돌면서 연수는 쫓겨나는 것보다 차라리 먼저 그만둬주겠다는 호기 하나로 회사에 사표를 낸다. 나름 심각한 사춘기를 겪었고, 다시 찾아온 것 같은 사춘기의 느낌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겠다고 벌떡 일어선 서른 셋의 연수. 그녀 곁에는 음악을 들으며 눈물 짓는 아버지와 갱년기로 외로워하는 엄마와 지긋지긋한 직장 조금만 쉬면 좋겠다는 동생 지수, 독특한 개성을 지닌 몇 명의 친구들이 있다.

#나에게 30대는...

서른 셋은 특히 여자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지닐까.  작품 속의 연수처럼 나는 빨리 30대가 되고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자유를 맛본 대학은 생각보다 그리 달콤하지 않았으며, 그 후에 먹고 살 길을 열어보겠다고 아둥바둥 공부한 시간은 호되고 힘들었다. 간간히 찾아온 행복과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기억하기보다 항상 어떻게 살아야 잘 산다는 소리를 들을까를 고민했고, 뭔가를 이루어도 성취감보다는 불안함에 휩싸이기 일쑤였다. 늘 남과 비교하면서 살아왔고, 언제나 전전긍긍했던 것 같다. 내 생각에 20대는 불안과 방황과 혼돈의 시기다. 지금의 불안과 방황이 30대가 되면 마치 봄눈 녹듯 스르르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꼭 30대가 되지 않아도, 어떻게 서른만 되어도 내가 원하는 것이 모두 내 손안에 들어와있겠지, 전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한 두가지는.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해야 해?!

하지만 삶은, 인생은 어느 한 기점을 축으로 180도 변해버릴 수도 있지만 아무 변화없이 지속될 수도 있는 것이다. 20대의 연수가 30대가 되기를 갈망하고 이윽고 30대가 되었지만 결국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듯이. 지금 그녀는 아버지의 환갑에 쓸 돈도 모자라 은행에서 적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하고, 아들딸 낳고 커다란 아파트에서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는 사촌의 때늦은 사춘기 푸념을 가끔 들어주어야 한다. 뒤늦게 피어오른 학구열에 영화공부를 하고는 있지만 안개같이 희미한 미래가 그녀 앞에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30대든 20대든 10대든, 혹은 노년기라 이름 붙여지는 그 어느 세대든 무엇 하나 특별하지 않은 시기가 과연 있을까. 10대인 조카 하나도 나름의 고민이 있고, 30대인 연수와 그녀의 친구들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을 원하고, 남이 가진 것과 자기가 가진 것을 비교하면서 제 살기 바쁘다. 노년기를 맞이하는 부모님들에게도 자신들만의 즐거움과 애환이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는, 혹은 우리는 너무 무리하게 기한을 정해놓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하라고 명령한 적도 없는데, 우리 스스로가 정해놓은 기한에 자신을 채찍질하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저 물 흐르는대로, 순간순간의 삶을 즐기면서 사는 삶의 여유가 부족한 것은 아닐까.

# 급하지 않게, 쿨하게 한걸음!

뒤늦게 좋아하는 일을 해보겠다고 회사를 뛰쳐나온 연수나 이혼하고 유학을 가겠다는 그녀의 친구 민경은 내 눈에는 참 멋져 보인다. 남들 눈을 무척이나 신경쓰고 살아가는 나에게 그녀들은 슈퍼영웅이나 다름없다. 조금 멀리 돌아가면, 지금은 눈 앞이 뿌옇게 보이면 어떤가. 일분일초도 알기 어려운 게 사람 인생이라는데. 나도 그녀들처럼 살아보리라 다짐한다. 다가오는 시간과 변해가는 모습들과 눈앞의 위기에 안달하지 않고, 여유있고 멋있게 그리고 담담하고 쿨하게!

서른 셋의 연수와 20대 중후반의 내 모습이 많이 겹쳐져 무척 공감하며 읽은 책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결혼이, 직업이, 정체성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아직은 막연한 30대.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세상 속을 걸어가면서 이제는 더 이상 나이 먹거나 내 삶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두려움으로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 같다. 내 인생, 아직은 괜찮아! 라는 문구에, 오늘따라 유독 기분이 상쾌해진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분홍쟁이(yulianna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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