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높은 산인줄만 알았는데, 그냥 열심히 올라가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지팡이 없이 물병없이는 절대 오를 수 없는 산이었다. 현대 문화 이해의 키워드란 제목을 보고 가볍게 생각한 잘못도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문명과 사회, 문화에 대해 처음 들어본 개념들로 시종일관 헉헉거렸다는 생각만 든다. 옆에 사전을 끼고 있거나 네이버 홈을 열어놓고 언제든지 검색 준비를 완료하지 않으면 한 페이지 넘기는데 한 시간이 걸릴 정도다. 그만큼 잘 이해하고 싶다는 욕심이 나는 책이란 뜻이다.
어렵기만 했다면 아마 포기하고 말았겠지만, 읽다보니 여러가지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느껴진다.
포스트모더니즘, 미메시스, 이데올로기...등등 이 책에서 현대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중요성을 지닌 개념들로 소개한 것들은 넘쳐나는 정보의 시대에서 스치듯이 너무 많이 들었던 말들이다. 하지만 홍수 속에 먹을 물이 없다고 그 넘쳐나는 것들이 다 내 것이 되지도 않거니와 나와 상관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각 키워드에 대해 주장하는 사람이 달라서 통일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하나 꼼꼼히 읽다보면 내 생활과 내가 누리는 문명과 문화와 연계해서 나는 이 이론의 어느 부분에 해당되는가...를 찾아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난해하고 복잡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문화라는 것이, 문명이라는 것에는 나라는 사람이, 삶이 속해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좋은 책도 나와 연결되지 않으면 분석해놓은 지식이나 현상에 불과할 뿐, 남는 것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다. 요즘에와서는 문화라는 개념이 개개인과의 관계성에 있어서 점점더 퇴색(?)되어 간다는 생각이 든지 오래이다. 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그 집단이 만들어가는 사조나 상황이 문화가 되기 보다는 만들어진 문화에 개개인이 끌려가는 듯, 혹은 그 시류에 편승하지 못하면 낙오되거나 세련되지 못함으로 평가받거나 분류되는. 그래서 인간은 문화 속에서 오히려 외롭다.
그러한 의미에서 마지막 부분에서 다룬 '소외를 넘어 문화사회로' 부분에서는 문화와 문명에 대해 재정의와 정리하는 차원을 넘어 신선한 충격과 공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자본주의와 만능주의가 충만한 이 시대에 붉은 악마에서부터 노사모,...등등의 문화현상으로 시작하여, 늘 개혁을 주장한 참여정부가 사실상 경제, 정치 개혁을 제외하고 사회개혁과 문화개혁이 정책적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는 것에 공감한다. 생존을 거듭하면서 점점더 개인주의화는 심해지고, 사회적 위기는 개인의 위기로 직결되었던 예들을 제시하며 '위험사회화'현상을 설명해주는데 그 동안은 뉴스로만 혹은 인터넷으로 접했던 우리 사회의 많은 사건, 사고 그리고 현상들이 하나의 단어와 정의로 정리되는 것을 보며 자연스럽게 읽는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다음 장에 제시하는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문화라는 말은 너무 다양하고 포괄적인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기에 자기 문화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집단에게는 작지만 깊은 영역일수밖에 없고 또 고급문화의 고리타분함에 질린 세대들은 새롭고 넓지만 얕을수 있는 대중문화를 창조해내기도 한다.
하지만 문화라는 개념은 시대를 거듭할수록 점점 넓은 의미로 확장되어 가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수동적이고 획일정인 '대중'에서 역동적인 '다중'으로의 역할 뿐 아니라 능동적으로 스스로 '소외'를 극복해나가는 존재로의 변화와 방법을 제시한 화자의 주장이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중간중간 어려워서 건너 뛴 부분을 다시 찾아 오르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 책을 완전히 정복하기 위해서는 좀 더 공부와 연구가 필요하다는 부담이 들기는 한다. 나에게는 아직더 오르고 싶은 봉우리가 많은 산같은 책이다. ^^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삐리리(tazzo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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