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그리다
인상깊은 구절
"연초에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가족 :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내게 '미술이 바라본 가족'을 테마로 발표해 줄 수 있느냐고 물어 왔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 근현대 미술 속에서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떠올려 보고 찾아보았다. 세미나 발표 원고는 원고지 100여 장 분량이었는데, 마침 이 원고를 접한 바다출판사에서 책으로 엮어 보자는 제의를 했고, 나 또한 별다른 저항 없이 그에 응했다." ('지은이의 말' 가운데)
책이라는 것이 경험재의 성격(경험하거나 구입하기 전에는 평가가 어렵다)을 띠고 있는 것이어서 모니터 앞에서 아무리 눈과 손을 꼼지락거려도 직접 마지막 장을 덮는 경험을 해 보지 않으면 이 책이 어떤 책일지 쉽게 감을 잡을 수 없다. 나 역시 며칠 전, '키스를 부르는 그림'이라는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이 책을 보기로 선택하면서 막연하게 가족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미술 작품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비극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라서 기대와 환상을 일정 부분 접고 있던 터였다. 그렇다고 해도 프롤로그에 들어가기 전 '지은이의 말'은 조금 충격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 솔직하신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ㅎㅎ 스스로를 엄청나게 비非가족, 심지어 반反가족적인 사람이라고 하면서 가족에 대한 이런 책을 낸 것이 낯간지럽고 쑥스럽다고 밝히고 있다.
나의 소감을 미리 밝혀두자면, 연도별 체계 같은 것이 그다지 일목요연하지 않아서 약간 두서없다는 느낌은 들지만 각각의 미술 작품에 대한 소개는 무척 충실한 것 같다. 그래서 무슨 공부를 해보겠다고 뛰어드는 준전문가분들이 아니라면 재미나게 볼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또 그렇지도 않은 것이 문장 해석이 참 어렵다. 처음에는 대충 넘어가다가 약간의 오기가 생겨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두 번, 세 번 읽어봐도 뭔 소린지 모르겠다-척박한 사회에서 '유일한 위안으로서의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역사적 국면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전쟁의 경험에 의해 구성되는 가족 이데올로기는 한편으로는 무사회적 고립자들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관계를 상상하는 준거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155쪽) 그림 앞에서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는 말자. 약간의 그림 공부와 함께 그저 내 느낌에 충실하면 되는 거니까.
지금까지 너무도 당연해서 돌아볼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우리 사회에서의 가족의 모습과 의미'를 거시적으로, 미시적으로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 책에 의해서도 그렇고 우리 가족을 봐도 그렇고 가족이라는 건 사람들이 보통 드러내놓고 이야기 하는 그런 화목함의 상징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못내 가슴이 아프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정성스럽게 가꾸어야 하는 장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장터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면서 때론 다투기도 하지만 삶의 척박함을 이기고 함께 살아가야 함을 알기 때문에 서로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더 긴 것을 보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린 가족이 얄미워지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아무리 이러쿵저러쿵해도 이 시대의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가족 안에서 화목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뿐이다.
[출처] [오늘의책콩] 가족을 그리다 (북카페 책과 콩나무) |작성자 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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