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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고려인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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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이야기 1,2
원영 지음
아름다운사람들


역사가가 역사적 신화의 종결자라면 소설가는 역사적 신화의 개척자다. 저자 원영은 5년의 시간을 기울여 고려말 내우외환의 난세를 배경으로 당시 고려민초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복원하고 있다. 현재 단지 두권의 새끼만을 낳은 아직은 미완의 어미기에 서사의 전반적인 구성과 의미를 한마디로 논할 순 없다. 그러나 민초들의 항쟁을 통해 민족적 혼불을 현재에 되살리는 역사소설이 될 것이라는 가능성은 가늠해볼 수 있다. 풍전등화. 지배계급이 내쉬는 마지막 숨이 운명의 불빛을 거둘 뿐이다. 민란. 억압받은 피지배계급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선택한 길이다.

역사소설 《고려인 이야기》는 1232년 몽골의 2차 침공을 무대배경으로, 크게 야별초, 민초, 몽골 이 3가닥의 스토리선으로 얼개가 짜여있다. 각각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역은 모두 가공의 인물들이다. 야별초 산전 정현응, 민초의 자식 전평과 임정, 케식(몽골특수암살부대)의 아르지란 인물이 그러하다. 세가닥의 서사 줄기는 「새로운 나라新國」를 꿈꾼 혁명가 도원국과 그가 만들었다는 「신국의 칼」과 연결된다. 저자는 서사적 긴장감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인물들의 활동무대를 넓혀나간다.


정현응은 몽골 원정군 사령관 살리타이를 암살하라는 최우의 밀지를 받고 목적지로 향하던 도중 기괴한 검은 칼을 쓰는 푸른 탈박의 습격을 받는다. 부하들을 모두 잃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그는 습격자의 행방을 쫓기 위해 최고의 정보망을 구비한 전국상인협회에 가입한다. 저자는 애국적 충정에 불타는 정현응이란 인물을 통해서 최우를 필두로 한 무신정권의 부정부패와 탄압을 얘기한다. 일례로 야별초는 최씨무신정권의 사설군대로 전락하여 민초들은 그들을 최우의 개라 여겨 개별초라 부른다. 그는 전국상인협회회장 진용의 도움으로 고려협객대회에 참여하여 천인회와 화개산파 같은 지하조직들과 선이 닿는다.


고려민초는 백정과 양수척, 노비, 초적, 범죄자 출신들이 두루 뒤섞인 부평초다. 민초의 삶을 보여주는 사건을 든다면, 제1권에서는 승려 김윤후을 필두로 한 처인성 전투와 전평과 임정을 위주로 한 암궁의 이야기로 나뉜다. 암궁은 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먹을 만드는 악덕소굴이다. 고려 민초들의 저력을 증명한 처인성 전투에서 적장 살리타이가 사살되고, 전평과 임정은 그만 암궁에 납치된다. 전평은 서경 화개산파 금강왕 전상의 아들이다. 제2권에서는 전평과 임정이 사슴눈이란 베일에 싸인 아이를 만나게 되고 같이 암궁을 탈출하는 이야기가 주축이 된다. 그들은 사슴눈의 고향을 찾아 도문강(압록강)까지 나아간다. 처인성 전투는 항쟁의 서막에 지나지 않을 듯싶다. 점점 드러나는 지하조직들의 규모와 움직임, 그리고 전평과 임정, 사슴눈이 함께 엮어가는 앞으로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아르지는 원래 여진족의 후예로 케식 우루무(송곳)의 부대장이다.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자신의 이름으로 장식하고 싶은 야심만만한 자다. 라르테란 딸을 처인성 전투 와중에 잃어버리고 부하 아자다이에게 그 행방추적을 부탁한다. 한 사람을 알려면 친구보단 그의 라이벌을 살펴보라는 말이 있듯 국가도 그렇다. 솔롱고와 솔롱고스. 몽골인은 고려와 고려인을 그렇게 불렀다. 아르지의 시선으로 고려의 물정을 살피고 아울러 몽골의 풍습과 제도 또한 알려준다. 그리고 아자(형님), 구육치(발이 빠른 자), 잠치, 투멘(만호장) 같은 몽골어가 자주 등장하여 현장감을 더한다.


조선왕조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눈으로 보면 고려는 무척 낯선 왕조다. 조선의 대척점에 있는 왕조가 바로 고려가 아닐까. 호국불교, 팔만대장경, 남녀평등, 벽란도의 자유무역과 색목인의 출입 등. 저자는 고려시대를 「혁명가들의 시대, 피와 눈물과 정신이 결합되어 실질적으로 행동했던 시대」로 정위한다. 삼별초와 고려민초들의 대몽항쟁은 사실상 잃어버린 역사의 조각들이다. 《고려인 이야기》는 이런 역사적 편린들로 대서사시를 그리려 한다. 무진한 혁명적 서사의 물결 앞에 서 있는 그런 느낌이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mediamatr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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