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시간
이정옥 지음
우리같이
[숨은 시간]은 순순히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는다.
독자들 손에 여러 조각의 퍼즐을 쥐어주며, 이야기를 직접 복원해내도록 유도한다.
[숨은 시간]에 숨겨진 이야기는 마지막 한 조각까지 마저 다 끼워넣어야 비로소 전체의 그림이 파악되는 대형 퍼즐이다.
보스턴 찰스강변에서 총성이 들리고, 한 한국 여성이 스스로 자신이 살인범이라고 자수를 해온다.그리고 총성의 현장에는 한국 남성의 시신 한 구가 남겨져 있다.
이야기는 이 간단한 사건에서 출발하지만, 진실은 감추어져 있다.
자신이 살인범이라고 주장하는 ’한설형’은 자신이 죽였다는 고백 이외에는 말을 하지 않는다.'한설형'이 숨기고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그녀는 정말 그 남자를 죽였는가? 죽였다면 왜 죽였는가?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숨은 시간]은 네 사람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설형의 숨겨진 삶의 진실에 다가간다.
홍강희, 박일규, 정준, 로렌.
홍강희, 박일규는 비교적 먼 과거에서부터 한설형을 알아온 사람들이다.
정준과 로렌은 비교적 가까운 과거인 한설형이 미국으로 건너 간 다음의 삶에 관련되어 있다.한설형과 관계된 사람들의 삶이 과거로부터 복원되면서,
그들과의 관계망 안에서 한설형의 삶의 실체가 희미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은 한설형과 도대체 어떤 관계인가?를 물어도 좋고, 한설형과 강력하게 또는 느슨하게 관계 맺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를 물어도 좋다.
한설형과 그의 관계망 안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낸 시간은 ’지난 시간’이다.
한설형과 그의 젊은 친구들은 격렬했던 민주화 투쟁을 지나왔고,
미국에서 만난 이민자들은 한국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지 못한 채, 한국을 ’떠나’ 살고 있다.
오늘을 이해하는 삶의 열쇠는 ’과거’에 있다.
오늘은 과거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낸 시간, 그리고 살아가고 있는 시간 안에는 계속해서 계절이 흐르고, 꽃이 피고 지고, 열매가 맺고 떨어지고, 다시 씨가 뿌려지면서 시간이 흐른다.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은 다시 내일을 지배할 것이다.
[숨은 시간]은 현재를 지배하는 과거이면서, 동시에 오늘이기도 한 것이다.
[숨은 시간]은 내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네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진실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한설형을 이해하기 위해, 그녀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그녀의 지난 시간에, 그녀와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의 삶의 진실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오늘의 나를 지탱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두 타인의 삶에 관계되어 있고,또 그들의 삶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함이었는지.
마지막 조각을 다 맞추고도 나는 자리를 떠날 수 없다.
[숨은 시간]의 질문과 감춰진 진실이 다시 나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설형을 이해한 것도 같고, 이해하지 못한 것도 같은 희미한 그림자 속에
한설형과 나는 어떤 관계인가?가 다시 물어진다.
내 삶의 오늘에 관계된 내 지난 시간과 그 시간 안에 함께했던 다른 이들의 시간들,
그것은 계속해서 계절이 흐르고, 꽃이 피고 지고, 열매가 맺고 떨어지고, 다시 씨가 뿌려지는 삶의 순환 그 어느 지점에 존재했던 우리 삶은 그렇게 함께 어우러지고, 함께 소멸하고 있으며, 다시 소생하고 있다.
타인의 삶과 함께 복원되어진 ’한설형’의 숨은 시간은 다시 나의 삶을 복원하는 퍼즐 조각이 된다.우리는 각자 분리되어 있는 듯 하지만 단절되지 않고, 내가 전혀 모르고 살아가는 그 누구의 시간이 다시 내 삶 속에 숨겨져 나의 오늘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작가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진실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이 알듯 모를듯 한 이야기의 퍼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의 삶과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삶의 조각도 필요할지 모르겠다.
작가의 글쓰기에 한가지 아쉬운 것은 한 문장 한 문장 과도한 은유가 이야기의 전개를 방해한다는 것이다.꼭 필요하지 않은 군더더기 묘사는 어울리지 않게 진한 화장을 하고 있는 얼굴 같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신의딸(ceo71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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