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계약하라 홉스&로크 지식인마을22
김영사
문지영
시끌벅적,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 것 같은 마을
동서양 역사에서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동시대에 모두 한 마을에 모여 산다면 어떨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꽤나 시끌벅적할 것이다. 여기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상의 개척자와 그 후계자들이 동 시대에 한 마을에 옹기종이 모여살고 있는 마을이 있다. 바로 “지식인마을”이다.
그 옛날 척박했던 이 땅에 뿌리를 내려 건물을 세우고 길을 만들었던 촌장들 60명의 집 30채와 촌장들의 뒤를 이어 지식의 세계를 풍성하게 만든 40인의 일꾼들을 위한 20채의 집이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는 지식의 터전, 그 중에서 나는 서양의 시민혁명기에 등장했던 두 사상가 “홉스”와 “로크”의 집을 찾았다.
“짐이 곧 국가다”는 말로 유명한 절대왕정, 신분계급으로 인해 일생이 결정되고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개인이 아닌 선택된 인간과 버려진 인간으로 나누어진 봉건적 신분질서, 그 맨 꼭대기에 있었던 왕권과 그 왕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받았다는 “왕권신수설”이 유행했던 유럽은 17세기에 들어 시민혁명의 거센 물결이 휘몰아 치기하기 시작한다. 왕으로 태어나면 제한 없는 엄청난 권력을 가졌던 절대군주제에서 헌법이 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입헌군주제로의 이행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왕권을 지키고자 하는 왕당파와 의회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의회파의 대립은 날로 심해져 가고 있었다.
이 시기 국가라는 권력의 출발점, 그 근원으로서 “개인”의 문제를 연구했던 두 학자, 바로 ‘홉스’와 ‘로크’였다. 이 두 사람은 실체가 없었지만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국가”에 대해 현미경을 들이 밀고, 결국 그 동안 감추어져 있었던 “개인”을 발견해 낸다. 두 사람은 “국가”가 자연적으로 생겨나거나 신이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자연 상태”의 개인들이 각자의 필요로 인해 “계약”의 형태로 만들어 낸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 대한 서로 다른 가정과 국가의 존재 목적에 대한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강력한 국가(리바이어던)를 꿈꾸었던 홉스”
홉스는 그의 유명한 저작 “리바이어던”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델을 보여준다. 일단 홉스는 계약 이전의 상태, 즉 “자연 상태”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고 알려진 홉스의 자연 상태는 서로가 서로에게 잠재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언제나 위협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또한, 위협을 통해 생겨나는 “공포”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되는 필연적인 것이라 피할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개인들은 서로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연권적 지배권을 절대 권력인 ‘리바이어던’에게 양도 하게 된다.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괴물을 말하는데, 이는 계약에 참여한 개인들 모두를 두렵게 하며 계약의 내용을 이행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의 소유자인 것이다. 리바이어던-국가-이 수립된 이후에 홉스는 리바이어던의 강력한 통솔과 인민의 단합, 복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리바이어던으로 상징되는 홉스의 국가는 전제군주에 대한 이론적, 실천적인 도전이 가시화 되고 국왕의 절대 권력에 헌법적인 제약을 가하기 위한 혁명이 진행되는 그 당시 상황에서 오히려 후퇴하는 것 같이 보인다. 따라서 그는 그 당시 의회 제도를 주장했던 새로운 정치 세력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나 동시에 홉스는 ‘리바이어던’이 지니는 절대 권력의 근거가 개인의 동의와 계약으로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그 동안 국왕의 권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된 신성한 것이라는 기존의 왕당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었다. 이처럼 그 당시 주요한 두 정치세력들 모두에게 비판을 받으면서도, 홉스는 역사적으로 신격화 되어 있던 국가라는 장치에, 냉정한 이성을 통해 국가에 대한 근대적 발상을 처음으로 가능하게 한 사상가였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국가를 꿈꾸었던 로크”
로크는 ‘통치론’이라는 자신의 저작을 통해 그 당시 유럽의 시민혁명을 요구하고, 선동했다. 의회파의 사상적인 토대를 제공했던 로크는 절대 왕정과 왕권신수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민주적으로 구성되는 의회와 의회에서 결정된 법률에 따라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정치 공동체를 주장했다.
먼저 홉스와 같이 로크 역시 ‘계약 이전의 상태’, 즉 ‘자연 상태’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다만, 홉스가 가정했던 ‘자연 상태’는 철저한 개별적인 개인들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공포가 가득한 공간이었다면 로크에 따르면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존재하는 상태로 본다. 여기서 자유란 개인의 욕구와 욕망을 무한대로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의지와 입법권에 구속되지 않고 오로지 자연법을 자신의 준칙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유롭고 평화로운 ‘자연 상태’에서 개인은 왜 자신의 자연권의 일부를 양도하면서 까지 국가를 만들어야 했을까? 이에 대해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권리들이 충돌할 수 있고, 이것을 조정할 권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따라서 국가는 강력한 권력으로 인민의 자유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재산(단순한 소유물을 넘어서 개인의 자유까지 포함한 것)을 가장 잘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이후에 “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발전하게 되는 사상의 기초를 제시했다고 평가된다.
로크는 그 당시 의회파 세력을 이끌어 시민 혁명을 이루고자하는 목적이 있었다. 따라서 그는 왕정을 대신할 통치체제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로크는 인민의 대표에 의한 통치 체제, 즉 대의정부제를 주장했다. 그리고 그 대의정부제는 법률을 만드는 “입법권”과 이를 현실에서 자국 내, 혹은 타국과의 관계들에서 집행하는 “집행권” 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또한 홉스가 리바이이던이 가지고 있는 절대 권력이 양도,분할,철회 될 수 없다고 주장한 데 비해 로크는 입법권과 집행권이 인민에 의해 폐지될 수 있다는 “인민의 저항권”을 인정했다.
국가와 개인, 유쾌하게 읽는 철학책
이제 대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일주일 뒤면 또 다시 우리나라를 5년 동안 운영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다. 홉스와 로크식의 표현대로라면 우리는 우리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리의 일부를 양도할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가지고 있는 무엇을 선뜻 내어줄 만한 후보가 없는 것 같아 더 답답해진다.
홉스와 로크, 이후 루소로 이어지면서 ‘국가’나 ‘권력’을 바라보는 입장은 점점 민주적으로 발전되어 왔지만, 실제 우리의 삶의 질이 역사적으로 진행된 논쟁만큼 성장해 왔는지는 의문이다. 책의 말미에 “지식토크, 테마토크”는 그런 점에서 상당히 재미있었다. 100분 토론의 형식을 빌려, 홉스와 로크를 패널로 등장시켜 한국사회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두 사상가들이 서로의 입장에 대해 비판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관점에서 본 오늘의 한국사회가 발전해야 하는 방향에 대해 주장하기도 했다.
사실 철학이나 정치학은 보통 사람들이 접하기에 까다로운 학문이다. 사상가들의 원전은 그 당시의 시대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이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고, 원전에 대한 해설서의 경우 기나긴 역사 속에서 그 사상가만 똑 떼어 놓은 듯한 느낌을 주면서 오늘날 현실과 다른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 ‘지식인마을’은 각 사상사에 대한 권위 있는 소장학자들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쉽고 자세하게 서술하면서도,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그의 현재적인 영향까지도 놓치지 않고 보여주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욕심나는 책이었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시꺼먼스(tiger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