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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는 주식보다 미술투자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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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식보다 미술투자가 좋다
박정수 지음


  제목이 좀 쩝스러워서 망설였던 게 사실이다. 특히, 라파엘로의 그림위로 노랗게 갈겨써주신 쌈마이스런 분위기가 더욱 그랬다. 그러나 미술투자. 라는 표제 때문에 지나칠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본래 난 관심이 많았다. 골동품에. 골동품, 수제품 뭐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러나 이게 뭐 그런 전문지식을 습득한 바가 없던 터라 그저, 유럽에 나가면 발품 팔아 내 마음에 드는 기준으로 사들였고, 팔 생각이나 시도를 해 본 적은 없다.

 언젠가 어떻게 알게 된 귀족집안 딸래미 누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인데, 그녀의 직업은 아트 디렉터. 그 말을 하면서도 굳이 뭐라 할 직업이름이 없는데...라고 말했었다. 한참 뒤에 나는 그 누나의 직업이 화상인 줄 알게 되었다. 그 누님의 손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그림들이 꽤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알만한 정,재계 양반들이 주 고객이었다고 말로만 들었고 그림의 가격도 기본 몇십억 단위였으니 당시 난, 이런 빌어먹을 말로만 듣던 초 부르주아가 여기도 있구나,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사실, 그때 뭐 내가 그런 어마어마한 금액의 거래를 해 볼 요량으로 그 누나에게 그런 공부는 어떻게 시작하면 되느냐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미술품이라는데 몇십억원대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었으므로 단순히 나의 개인적 취향 때문이었다. 답은 이랬다. 돌아다니며 많이 봐야지 뭐. 그거였다. 노인영감의 위대한 영도력은 어디서 비롯되냐고 물으니, 뭘 많이 맥여야지 뭐. 라고 대답하는 동막골 촌장과 비슷했다. 평창동이나 인사동 다니면서 많이 봐. 유럽나가면 골동품시장도 많이 다녀보고. 보다 자세한 대답을 원해라고 외쳤을 때 해준 대답이 조만큼이다.

 어쨌든 확실한 건 당시에는 그렇게 미술품이나 골동품들이 현물 투자가치로 형성되는 시장에 대한 정보를 접한다는게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야말로 옛날 전당포 시절 냄비에 물끓여 가며 상품 가치 보는 법을 배우는 것 마냥 1:1 학습이 유일했다고나 할까. 안 그럼 교도소라도 달려들어가 그 유명한 장물아비들을 사부로 모시거나 말이다.

이 책이 최근 시대적 흐름에 맞추어 나온 책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미술품 매매의 벽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 점에 있어 이 책의 성과는 크다. 아주 쉽게 말해 고속버스 터미널의 지하 표구상에서 파는 미술품도 미술품이고, 인사동 화랑에 걸려있는 미술품도 미술품이라는 사실을 보다 친근한게 알려주었다. 이미 내가 겪었던 바대로 그림이란게 그들만의 리그에 해당되는 억대 가치의 것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 많다라는 정보도 유용했다.

  난 장사꾼이라 그런지 저자의 그림판 유통의 이야기를 보면서 뭐 이거 유통이란 죄다 똑 같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유통의 질서, 작가와 딜러의 관계, 화랑의 존재, 가격 형성, 거래 결정요인 기타 등등 많은 부분이 비슷했다. 상품이 미술품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나면 거의 90% 이상 유통의 원리 그대로였다.  단지 아직 확실한 상거래 툴이 형성되지 않은 미개척 유통분야쯤 되겠다. 내가 이해한 바대로라면 말이다.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그림이란게 감상만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기면 구매에 부담이 적을 뿐더러 무명의 작가가 어찌 될는지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미술투자란 참으로 고상하며 현실적인 투자일수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저자의 말에 동감이다. 저자가 몇몇 유통의 다른 분야에 대해 주장한 바들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공감이 가는 얘기들이었다.

    물론 저자가 말한대로 30만원 짜리 그림이 몇년 뒤에 300만원이 될수 있다라는 주장에 대해 관심이 없는 바는 아니나, 내가 더 고개를 끄덕였던 부분은 안팔려도 그만이다, 라는 점이다. 내가 좋아서 내 집에 걸어 놓고 보아도 그 가치가 훌륭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혀 쓸모없는 물건을 구매하여 창고에 처박아 두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할 것이다. 

 단지, 그림을 잘 알아야 구매가 가능할 것이라는 내 개인적인 통념을 조금 깨뜨려주었다는 점에서도 잘 만난 책이다. 특히, 신인작가인데 앞으로 활동을 꾸준히 할수 있는 작가가 유망하다, 라는 점이 많이 와닿았다. 그림의 가격은 그림으로써의 가치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왕성한 작가의 활동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 원리는 단지, 미술품 가치척도의 원리를 떠나 경영과 마켓팅의 원리에도 등장하는 얘기들이다. 미술품을 미술품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상품 거래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이해는 더 빠르다.

 간단한 순서이다. 자주 접하고, 접하다 보면 관계자들과 접할 기회가 늘어날테고, 그러다가 하나 둘씩 직접 구매도 해보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멍청이 아닌 다음에야 자신만의 안목도 생길 것이고, 뭐 그런 거다.

  어쨌든 저자는 갤러리의 문턱이 보다 낮아지고 그로인해 보다 많은 그림이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손쉽게 거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 같다. 충실하고 견고한 미술품시장이 형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는 점이 확고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한 발 떨어진 사람의 입장에서 고상한 직업이라 여길수 있었던 화상에 대한 뒷얘기들을 몽땅 까발리는 과정에서의 갈등이 없지 않았겠지만 솔직하고 당당한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라 보기에 더 즐거웠고, 미술계 보수주의 원로들은 미간을 찌푸릴법한 얘기들도 다수 들어있는 것 같다.

미술품에 관심이 있다면 굳이 매매를 위한 것이 아닐지라도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비토(vito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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