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박물관
세상에 존재하는 모두는 변화하기 마련이다. 사람이 인식하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사람에게 인식되는 것들은 단세포에서 인간으로 진화되어왔던 과정처럼 꾸준히 퇴화하고 새로 생기는 변화를 거듭해왔다.(참고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란 우주의 생명체처럼 존재함이 확실치 않은, 인간이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보이진 않지만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부류를 일컫는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돌고돈다.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지만 과거를 잊는 사람도 있다. 현재는 분명 과거보다는 나아진 삶이기에 전보다 나아진 욕심이 또 다른 욕심을 부르듯 나아진 삶에 도취되거나 생활에 충실하다보면 과거를 잊는 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과거는 잊는다고 잊혀지는 건 아니지만..현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윤택하지는 않지만 생각해보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과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부팔리노처럼...
오늘날...오늘날은 삶과 죽음이 악보 음계들을 뒤흔들며 불협화음을 만들고 그것을 가속시키기도 늦추기도 하는 거만함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P19 ]
노후를 맞이한 부팔리노의 눈에 비춰진 코미소는 그렇게 극심하게 변해있었다.
부팔리노는 변해버린 자신의 고향 시칠리아의 코미소의 현대문명의 현란 (眩亂)한 모습들을 뒤로한 채 과거에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소박하고 정겨운 시칠리아섬을 그리워하며 그 때의 추억을 하나씩 되짚어 간다. 시골이었던 고향이 도시화되면서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물장수,석공,방문미용사 등의 행상 비슷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사라지거나 달라진 포도밭,극장,공동묘지였던 장소들..토속적인 방언으로 비유한 사람들의 얘기와 모순덩어리인 속담과 익살스런 농담을 통해 시칠리아의 사람들에 더해 시칠리아의 내면을 바라보고, 그의 푸르던 날의 사랑,문화생활의 작은기억, 부팔리노를 되돌아 보게 만드는 시칠리아와 인연이 깊었던 인물들, 유별났던 별별 사람들의 추억담을 들려주고 있다.
코미소는 세상의 변화들 속에 하나일 뿐이지만 그 하나가 새롭게 변화하기까지 수많은 흔적과 추억들,기억들이 지나갔다. 그림자처럼...그 속에서 자신의 삶이 머물렀었던 과거의 모습을 끄집어내어 박물관에 전시하듯 그려내고 있다. 화려하거나 세련되지 않았지만 그 때의 정겹고 소소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배경과 사람들로부터 풍겨온 일상의 추억을 떠올리며 회상한다.
코미소의 모습은 우리의 고향을 연상시킨다. 특히 그 때 코미소의 직업과 장소들에서...
그러나 지금은..완전히 딴 세상이 되어버린 시골, 농촌과 도시의 구분이 희미해져가는 곳도 많아졌다 .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다. 과학과 기술이 진보할수록 정은 끊기고 훈훈한 인심도 사라져만 간다.
더 이상 그에게 코미소는 시칠리아에서의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우리의 고향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도 변해버렸다. 그 모든 것은 심각한 자연의 파괴처럼 너무도 멀리 온 것일까?...과거를 간직하고 보존하면서 현재를 살아갈 수는 없는것일까? 현재는 과거가 다져온 노력의 산물인 까닭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역사적인 사실들은 때론 풍자적인 유머가 있고 때론 일기처럼 솔직하고 때론 시처럼 부드럽고 때론 소설처럼 허구적이기도 하다. 에피소드 형식으로 소설과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빗대어 주로 표현하면서 은유,비유,직유,역설 등의 문학적인 요소가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는 재치를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섬세하고도 진지했지만 거침없었다. 그는 과거의 이상향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말하는 도시의 어두운 삭막함은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지만 시칠리아의 고즈넉하고 구수한 모습들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듯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청사진을 보듯 과거속으로 여행해 보는 기분이랄까?...나만의 추억 또한 그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