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낯선 시간들 - 어떤 생의 발굴, 로렌 아이슬리 자서전
All the Strange Hours: The Excavation of a Life
로렌 아이슬리
강
이 책은 로렌 아이슬리 자서전이다. 인류학과 고고학을 전공한 그는 1977년 삶을 마감한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그리 큰 시간상의 괴리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의 일생을 읽다보면 누군가가 살았던 흔적이 아닌 한편의 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사실적이기도 하면서도 때로는 모호하고 때로는 혼란스러운 듯한 그의 글쓰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시간을 공간을 모두 상실하고 그만의 시간 속을 헤매게 만드는 듯 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어렴풋이 기억 속에 떠도는 섬들을 모아 그의 일생을 따라가 보지만, 그럼에도 다시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나는, 그렇다, 시간과 장소를 헤매고 있다. 내 이야기가 비틀거린다. 하나의 생애를 말하려면 묘비석 위를 서성대야 하고 거기서 기억이 침침해지고 문이 삐걱 소리를 내지만 결코 열리지 않는다. 귀를 기울이든, 그렇지 않든, 전혀 상관없다.”
어떻게 보면 그의 책의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는 문장을 그의 책속에서 발견한 셈이다. 그래서 더 이문장이 눈에 띄었는지도 모르겠다.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적혀있던 문장이었는데, 이상하게 이 책의 느낌이 이럴 것 같다는, 혹 그 또한 짐작하고 있어 이리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그의 책에는 매력적인 부분도 존재한다. 그의 젊은 시절의 이동하고 또 이동하는 모습에서,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발견하지 못한 채 어딘가를 헤매는 듯한 모습이라 느껴지는 듯한 그의 연구와 그의 삶은, 흡입력 있게 독자를 끌어들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그가 이룩하고자 했던 바는 아니겠으나, 그의 세계를 공감하지 못해 밀려나는 듯한 느낌이 드는 부분들도 있었다.
“나는 골격에 씌운 살갗이 오그라들면서 계속 일그러지는 누더기 인형 같았다. 한밤중에 아장아장 걸어와 부모에게 평화를 애걸하는 아이, 분노를 짓누르다가 급기야 분노로 몸을 떠는 청년, 책만 파는 고독한 은자, 1912년의 눈보라 속을 필사적으로 달리며 꿰뚫는, 투사된 도망자 자기 자신의 이름이 달린 황폐한 집의 주사위 도박꾼. 그는 누구인가, 진짜 모습은?”
그는 누구인가, 진짜 모습은?......
그의 젊은 시절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빼드로 빠라모”라는 책이 떠올랐다. 혼란스러움과 고독, 방황을 담고 있는 책의 분위기에서, 자서전임에도 인생을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문학적인 느낌이 강하게 표현하고 있는 글의 방식 등이 혹 비슷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솔직히 정확하게 그 줄거리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로렌 아이슬리의 젊은 시절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그 느낌과 그 책에서 받았던 인상이 유사한 듯 느껴졌는지 계속 떠올랐던 책이다. 그 당시 “빼드로 빠라모”를 읽으면서, 특이하면서도 재미있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조금은 겉도는 듯한 책 읽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도 조금은 남아 있다. 게다가 그 기억이 꽤 흐릿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다시금 그 책을 읽을 때가 돌아왔나 보다.
“지금 제 기분이 바로 그래요. 우주는 우리 정도 지력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경악스럽고 괴팍한 게 아닐까 하는. 대중적인 견해는 아니죠. 오컴의 면도날을 날렵하게 놀려 하나의 복잡한 세계에 대한 가정을 인간의 비율로 깎아내려야 좋아하잖아요. 저도 노력은 하죠. 그런대 대개는, 우주가 여타의 그 무엇이든, 어쨌거나 그게 단순하다는 생각은 사기라는, 저기 저 새가 그렇듯, 속임수라는 느낌으로 끝나는 거예요. 그래요, 우리가 알게 된 것은 많죠. 하지만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광대한 영역이에요. 딱히 자연이 우리를 기만한다는 애기가 아녜요. 우리가 우리 자신의 꾀로 스스로를 기만한다는 거죠. 전 단순성을 믿지 않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그리고 그의 연구에서의 기본적인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 문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직 그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지 못했기에 명확하게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언급할 정도로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을 처음 발견할 수 있었던 부분이 아닐까 한다.
로렌 아이슬리의 경우는 조금은 다른 방식의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떻게 보면 타협할 줄 모르고 천천히 자신의 길을 나아가기만 했던 그의 삶 속에 고독과 애잔함이 보이는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편향되지 않으면서, 그 모든 것들 앞에서 겸손하고자 노력하며, 위대함에 당연히 숙연해질 줄 아는, 그리고 그의 연구를 떠나서 과거의 시간들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그 시간들이 그대로 남겨져있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의 조각들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자서전을 읽었음에도 오히려 명확하게 보여 지는 것보다는 그렇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은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랐던 생각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로렌 아이슬리라는 인물의 뇌 속에 떠있는 무수한 섬들을 한 공간씩 점유해나가면서 그의 기억들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공유하게 된 듯한 느낌이었다. 때로는 매력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어지럽기도 하고, 때로는 두서없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물론, 누군가의 뇌 속을 헤매는 듯한 기분을 알지는 못하지만) 색다른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해하지 말 것. 나는 다시 꿈꿀 것이다. 하지만 더, 더, 뒤로. 장총들이 침묵당하고, 주사위가 마침내 부동일 것이다. 내 시간이 오고 있는 것을 느낀다. 나는 초조하게 재촉한다. 그들이 나를 기다린다. 개 울프와 그 인디언이, 안데스 산맥 꼭대기 고원 분지에서 눈 목도리를 두르고.”
자서전이 이렇게 끝이 난다. 조금은 쉽지 않은 독서였음에도, 이제는 그의 다른 책들을 통해 좀 더 명확하게 그를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이 안개 속에서 헤매는 것을 멈출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그 안개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지는 않다. 자서전 속에 담겨 있는 그 시간은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리고 그 누구도 다시는 경험할 수 없기에 그 자리에 그렇게 남겨져있기를, 그리고 또 다시 로렌 아이슬리의 글을 만나러 왔을 때 그대로의 그 모습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아멜리에(father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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