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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 줄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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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의 고전
이창일 지음
살림

내가 아는 사람 중 대화를 할 때 고사성어를 많이 쓰는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을 고리타분하게 여기며  괜히 잘난 척하는 것 같아 마음이 별로 가지 않았다.

그러나 한 해 두 해가 갈수록 그사람에게 많은 걸 배우게 되면서 그 사람을 마음 속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고사성어는 상대를 간명하게 감동시키는 힘이 있고

화제의 핵심을 한마디로 압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적시에 고사성어를 인용하여 설득력을 높일 수 있는 것과

말이 지나간 뒤에 여운을 남기는 화법에 고사성어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그 사람을 통해 터득했다.

이후 내가 하는 공부와 관련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고사성어 책을 자진해서 구입해 읽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전에 읽은 책은 고사성어의 뜻풀이에 그치고 있어서 고사성어에 대한 내 목마름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고사성어는 압축된 고전'이며,

고전의 웅장한 규모를 압축시켜서 그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 고사성어라고 저자는 정의한다.

책은 우리시대 우리 감각에 맞게 쓴 고사성어 20개를 강의식 필체로 꼼꼼하게 다루며

고사성어의 뿌리와 배경을 깊고 넓게 소개하며 고사성어의 탄생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짚어준다.

이 책의 저작 동기는 단순히 고사성어를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데 있지 않고,

그것을 우리 삶에 연결하여 활용하도록 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줄의 고전]은 고사성어에 압축된 고전의 내용을 맛깔나고 구수하게 풀어주는 책이다.

네 음절 혹은 두 음절로 이루어진 고사성어의 압축을 풀면 무수히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지만

저자는 단지 정보 전달자의 역할은 사양한다.

그 안에 담긴 지혜, 지혜를 삶에 적용하도록 도와주는 조력자가 되기를 원하며

이를 위해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변하는 데 더 힘을 쏟았다고 밝힌다.

부정적인 고사성어가 실은 매우 긍정적이며 명랑한 의미라는 것이다.

일테면 "너는 자린고비야"라는 말을 "경제 마인드를 갖춘 사란이야"로 받아들이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걱정'을 뜻하는 기우(杞憂)는

3200년 전 중국 기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것을 걱정하며 던진 심오한 질문,

"이 세상이 영원할까?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종말이 있는 것일까?"에서 출발 했다고 한다.

그 심각한 질문이 한낱 쓸데없는 걱정으로 둔갑하기까지의 과정은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이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놓치지 마시라.

이판사판(理判事判)은 맥락이 온전히 다를 뿐 아니라, 쓰임도 완전히 다른 경우다.

이판과 사판이 생긴 곳은 절이다.

경전을 읽고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는 승려를 이판승,

절의 경제활동을 책임지는 승려를 사판승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사판승보다는 이판승이 진짜 승려처럼 생각하는데,

이판사판은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이 건국되는 왕조 교체와 연관이 있다.

이판사판이 처음 쓰임과 완전히 다른 모양세를 갖추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 역시 흥미로운 여행이었다.

 

게다가 고사성어의 배경이 된 인물과 시대를 읽는 재미는 이 책이 지닌 장점이다.

무릉도원(武陵桃原)을 읽으면서 만난 도연명과 그가 쓴 [도화원기]와 [귀거래사]를 훑고

이태백과 백거이를 짧게나마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청수무어(淸水無魚)를 읽으면서 만난 반초와 굴원이라든가

우리나라에서 만든 고사성어인 자린고비에서는 충북 충주에 사는 고비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고,

압권(壓券)이 과거제도와 관련있는 고사성어라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고사성어 속에는 여러 모습들이 숨 쉬고 있다.

고사성어는 박제된 글이 아니라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말이다.

이 말을 우리 삶으로 끌어와 그 안에 담긴 지헤를 활용한다면 우리는 농축된 정보를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읽는 재미와 알아가는 재미를 동시에 선사해 준 [한 줄의 고전]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두메산골(joh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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