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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기적



빈센트 람의 기적은 '의학소설'이고 열두편의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연작소설이다. 요즘 글을 쓰는 분들은 예전처럼 단순히 글만 쓰지 않고, 현직경찰, 현직의사, 현직 변호사 등등 능력있으신 분들이 본인의 경험담을 그대로 토해놓는 얘기들을 쓰셔서 읽기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아 좋다.

평소 병원24시, 닥터스 등등의 의학관련 프로를 즐겨찾아 보는지라 이 책이 그런 내용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냉큼 선택해 읽었는데 역시나 ~

이책의 처음 100여페이지 정도는 의과대학에 입학하고자 열심히 공부하는 밍, 피츠, 천, 스리라는 의사가 되고파 열심히 공부하고 결국 의사가 된 네명의 젊은이의 모습을 그리고 나머지 삼백여 페이지는 산부인과, 항송 이송 담당의, 응급의가 되어 각 분야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을 담담히 그려내면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 의무와 양심, 삶과 죽음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도덕성을 표현하는등 의료현실을 리얼하게 꼬집어내고 있다.

현직 의사가 쓴 글이라 그런지 병원 안, 밖 상황이 굉장히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어 내가 응급 상황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전문용어가 흘러 넘치지만 내용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던지 ~

 

12편의 이야기 중에서도 몇가지 인상깊은 이야기가 있는데 일단 내 자신이 여자라 그런지 남편도 없이 급박하게 출산을 해야하는 상황을 그린, 생명의 귀중함과 탄생의 기쁨이 함께인 이야기 '집요한 파도'와 뇌졸중 환자를 비행기로 수송하며 생긴일을 그린 '야간 비행' 속 라파엘과 니키, 피츠의 대화가 잊혀지지 않고, 사스SARS 환자를 치료하다가 역시 사스에 걸리기도 하고, 죽음을 맞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접촉자 추적'은 신종인플루엔자로 고통받는 지금도 너무도 비슷한 상황인지라 안타까움을 금할수가 없었다.

 

2년전 추석 명절에 자전거타다 다쳐 응급실에 상처를 꿰매러 간 적이 있었다. 별 상처는 아니었는데 응급실에서 상처부위 소독을 꼼꼼히 안해준 바람에 바이러스 감염에 걸려 한달이 넘겨 입원해 있었던 적이 있었다. 처음 처방해준 항생제에 내성이 생겨 (보통 약을 처방하면 15일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한다) 다시 새로운 항생제를 투여해 경과를 지켜보느라 그렇게 오래 걸렸는데 처음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상처부위가 무릎부분인지라 잘못했으면 다리를 절단할 수도 있을 최악의 상황에 놓일 수도 있었단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그 때 한달이 넘도록 꼬박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힘들고 외로웠던 기억때문에 지금도 누가 아프다고 연락 해오면 무심히 넘기지 않고 병문안은 꼬옥 ~ 가는 습관이 생길 정도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그때의 일이 생각나 건강한 내 몸, 건강한 내 가족에게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니키가 질문을 읽는다

" 당신은 1년 동안 원하는 삶을 살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1년 동안 당신은 바라던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꿈꾸던 모든 환상을 이룰 수 있습니다. 너무나도 행복하고 만족스럽겠죠.

그 1년이 지나면 당신은 고통 없이 급사하게 됩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아니면 지금처럼 살겠습니까?"

마커스가 대답한다.

"교묘한 문제네요.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를 묻는 거잖아요."

라파엘이 묻는다.

"기장님은 어떻게 하실 건데요?"

"교묘한 문제에는 답변을 거부하겠습니다."

마커스가 이렇게 대답하자 니키가 야유를 보낸다.

"알았어요. 지금처럼 사는 쪽을 선택하겠어요. 살면서 모든 꿈을 이루고 건강하게 늙을 생각이니까. 그렇게 길고 가늘게 살고 싶어요.

1년동안 모든 걸 이룰 필요가 없잖아요?" [p.293]

 

기적, 야간비행 中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인상깊에 다가온 글귀다.

매일 대박을 꿈꾸고 로또 1등의 행운을 꿈꾸긴 하지만 그것이 1년으로 제한된다면 과연 ???

나 역시 가늘고 길게 살면서 내가 하고픈 것들을 하나하나 욕심없이 천천히 이뤄가고 싶다. 학창시절엔 막연하게 빨리 어른이 되고팠는데 조금씩 나이가 먹기 시작하니 10대엔 10키로 20대엔 20키로 30대엔 30키로로 내달린다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 . . . 점점 삶의 체감 속도가 빨라지는걸 온몸으로 느낀다. 빨리 달리면 빨리 도착해 좋을 수 있을지 몰라도 매 순간마다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을 못보고 지나치지 않나.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까.

하나하나 해답을 찾아갈 수 있게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가장 특수한 공간에서 뽑아낸 가장 보편적인 감동. 책 '기적'이 주는 묘한 여운에 센티멘탈한 하루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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