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공주와 기사 올리버
하얀 성 위에서 방패를 들고 칼을 뻗은 한 소년,
다 낡아빠진 옷을 입고 느긋한 모습으로 노래를 하는 듯한 흑인,
공주 왕관을 쓰고 구석진 자리에 오롯이 앉아있는 소녀..
표지에서 보이는 하얀 성에서 어울려야 하는 인물이다.
외국소설같은 제목이지만 청소년 소설이란다.
"열 다섯 살 소년이 커다란 개를 칼로 찔러 죽였다."라고 시작되는 책 소개를 보면서 청소년기 아이들의 무서운 방황을 그려냈나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폈다.
아하~이래서 추천의 글에 그 문장이 있었구나. 절대로 손에서 책을 놓기가 쉽지 않다. 그 다음이 궁금하고 또 그 다음이 궁금하고~날밤을 꼬박 새면서 한 순간에 다 읽어버린 책이다.
전혀 다른 공간에서 만나는 성장소설이다. 우리가 흔히 보게되는 청소년의 방황만을 그린 소설이 아니다. 어찌보면 엉뚱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글감이다.
뜨거운 남아프리가공화국의 크리스마스 즈음이다. 교회의 구석진 지하실에서 전혀 다른 세 사람이 만났다.
들떠있는 크리스마스와 뜨거운 아프리카가 싫은 수현, 할머니가 들려준 하얀 성을 지키기 위해 지하실로 숨어든 모자란 아이 올리버, 그리고 누더기 옷을 걸치고 천하태평으로 노래하는 흑인 타보.
'유색 인종과 백인과 흑인'
'이민 온 새로운 사람과 원래 살던 원주민과 그 원주민을 밀어낸 백인'
'여유있는 자와 가난이 싫은 자와 아무 것도 없는 자'
이 세 사람을 표현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단어가 전해주는 인종차별의 잔존이 남아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추운 겨울에 맞이 하는 크리스마스는 따뜻함을 연상시키지만 더위에, 땀에 어쩌면 서로 뜨거운 열기에 멀치감치 떨어져야 하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라는 시간적 배경에서 전혀 다른 극과 극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이 공공유해야하는 공간이고 시간이기에 전혀 다른 세 사람은 공존을 해야만 하고, 그것을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늘 우월하다고 표현되는 백인이 오히려 흑인을 따르게 되고, 자신과 다른 유색인종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흑인을 보여주고, 한국에서부터 얼어있던 마음이 모자란 백인과 새까만 흑인의 진심으로 먼 이국땅에서 조금씩 녹여가는 한국 여자아이의 모습은 인간은 결국 서로 똑같다는 존재감을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이런 이야기의 흐름에는 흑인 타보가 있다.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 차별을 직접 겪었고, 그로 인해 오랜 세월동안 사라진 친구를 찾아 헤매는 타보는 친구를 찾기 위해 수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수많은 인간을 만났을 타보는 우리 어른들의 한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피부의 색이 우선이 아니고, 태어난 장소가 우선이 아니고 종족의 우위를 따지는 것이 아닌 인간 본연의 모습만이 진실된 결과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엄마의 부재와 아버지의 무심함으로 외로움이 극도에 달했던 수현이 마음을 풀어가는 과정은 한단계의 어른으로 성장하는 성장통의 하나이다. 아이들이 어른으로 커가는 과정은 누군가 억지로 붙들어놓고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지도 않던 사건을 겪고, 동화되고, 마음아픔과 고통과 슬픔과 그리고 안도감 이 모든 것을 지나야만 진정한 한단계 위로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청소년의 아이들을 불러다놓고 이건 이래서 인생을 살아야 한다. 저건 저런 이유로 이렇게 나아가야한다라고 가르침을 주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생활속에 인생속에서 수많은 일을 겪고 또 겪어야만 나의 진정한 어른이 되는 밑거름을 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한다.
단, 어른이 이 책을 읽는다면 이것만은 알아두어야 할 포인트가 있다. 아이와 똑같은 시선으로 아이의 성장점을 보려 하지 말자. 어려운가? 아니 아주 쉬운 답이다.
아이와의 시선을 맞추되 아이보다 더 한단계 나아간 시점을 기억하고 아이와의 시선을 맞추자는 것이다.
흑인 타보가 아프리카가 싫다고 소리를 지를 때 똑같은 시선으로 수현에게 답변을 한다. 그리고 곧 스스로 반성을 하는 장면이 있다.
"돌아가라고? 좋아! 나도 그렇고 싶다. 누군 뭐 여기 오고 싶어서 온 줄 알아?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도 진작 돌아갔다고!"
수현은 기름 먹은 불꽃처럼 활활 타올랐다.
타보는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엇다.
'이런, 내가 지금 누구를 상대하는 거야? 상처 입은 아이한테 불을 지피고 있잖아?'
숨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수, 미안하다. 내 말이 좀 지나쳤구나. 아프리카가 너에겐 낯선 땅이니 적응하기 힘들 수 있겠지. 그런데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난 거냐?"
타보가 목소리를 낯추고 자분자분 이야기하자, 수현 마음속의 불길도 잦아들었다. 수현은 실이 끊어진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그만 고개를 툭 떨어뜨렸다. 덩달아 어깨도 축 늘어졌다.
청소년이라는 존재가 그렇다. 금새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고, 줄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진다. 상처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상처 때문에 거칠어진다. 상처를 조금만 달래주면 더 큰 전환점을 스스로 찾게 되는 것이 청소년기이다.
내가 청소년 소설, 성장소설을 즐겨 읽는 이유가 이것이다.
나 역시 청소년을 힘들게 거쳐왔지만, 지금의 시선대로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꽁꽁 감춰왔다. 어릴 때의 상처는 어른이 된 후에 꽁꽁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숨겨놓은 듯 하면서도 아주 힘들 때 가끔 존재를 나타내는 것이 청소년기의 상처다.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 그 상처를 보듬어주고 긍정적으로 풀어나가야하는 것은 어른의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 소설을 즐겨 읽으면서 상처를 보듬고, 또 보듬는 방법을 배워 나간다.
<망고 공주와 기사 올리버>는 큰 의미로 보자면 인종 차별로 유명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소재가 있다. 단순한 인종 차별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소설이 아니다. 인종차별이라는 것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하나의 못된 행태일 뿐이다. 그 속에서 부대끼고 살아가는 수현과 올리버는 인종차별이라는 단어가 굳이 와닿지 않는다. 그저 내 속에 있는 아픔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아픔은 서로의 아픔을 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 치유한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청소년들은 잘 보듬고 잘 이끌어야 한다는 또 다른 의미를 갖어본다. 가르쳐주는 그대로 답습하는 가능성 때문에 인종차별이라는 바탕 위에서도 서로의 인간됨과 인간 내면의 진정성을 볼 수 있게끔 하는 소설이 바로 <망고 공주와 기사 올리버>다.
240여페이지의 청소년 소설이 뭐 그런 큰의미가 있을까라고 되물어 볼 수도 있지만, 청소년 소설, 성장 소설이라는 것이 이런 묘미가 있기 때문에 읽게 된다. 작은 사건으로 나의 아이들에 대한 시선과 나의 어릴적 치유받지 못한 아픔을 다시 치료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시간을 잠시 갖게 된다는 것. 이것이 소설의 묘미라 말하고 싶다.
[출처] [오늘의 책콩]망고 공주와 기사 올리버 (북카페 책과 콩나무) |작성자 멋진엄마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든 램지의 불놀이 (0) | 2009.12.04 |
---|---|
에브리맨 (0) | 2009.12.03 |
거슨 테라피 (0) | 2009.12.01 |
기적 (0) | 2009.11.30 |
이집트 역사 다이제스트 100 (0) | 2009.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