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카밀로와 페포네를 기억하십니까? 제 기억에는 이들이 유쾌한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받아보던 소년 잡지에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이란 만화가 있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그게 조반니노 과레스키의 《작은 세상》을 원작으로 한 각색 만화라는 걸 몰랐지요. 돈 카밀로 신부와 어리숙한 공산당 페포네의 티격태격에 배꼽을 쥐고 웃었습니다. 그러다 10여 년이 지나 우연히 대학 도서관 서고에서 발견한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이란 책을 보고선 짧은 탄성을 질렀습니다. 그때 조반니노 과레스키를 알았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그의 유머는 변함없었습니다. 이제 또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은 발췌 번역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조반니노 과레스키의 돈 카밀로와 페포네는 《작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지금 저는 그런 그의 또 다른 이야기 《까칠한 가정부》를 소개하려 합니다.
《까칠한 가정부》는 실제 과레스키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가상의 인물인 ‘과레스키 가족의 협력자 조’를 제외하고는 모두 실명으로 등장합니다. 그들의 실제 일상이기도 하고요. 과레스키 특유의 풍자와 과장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그의 생각과 가족들의 생활 하나하나가 유머러스하게 전개됩니다.
과레스키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1950년대 초반에 유머 주간지 『칸디도』에 연재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국내에 《까칠한 가족》(부키, 2006)으로 소개되었지요. 과레스키는 이후 1964년부터 1968년까지 시사 주간지 『오지』에 고정 칼럼으로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이야기들은 1968년에 『가족 생활 Vita in famiglia』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여기 실리지 않은 이야기까지 포함하여 그의 사후에 『조와의 생활 Vita con Gio'』이 출간되었습니다.
《까칠한 가정부》는 바로 이 책 『조와의 생활』을 옮긴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과레스키 가족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 선별해서 실었다고 하네요. 이야기의 순서도 조금 바뀌었고요. 하지만 이탈리아를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당시 유행가나 이탈리아 인기 배우, 사회 정세 등을 알려주는 섬세한 역주는 무척 맘에 듭니다. 역주가 아니었다면 과레스키만의 풍자를 이해하기 힘들었겠지요.
엉망이 된 집안 살림을 도울 사람을 찾아 조반니노와 마르게리타는 조콘다 치콘, 조를 가정부로 들입니다. 그런데 가족의 협력자가 된 이 조라는 아가씨는 목소리가 참 큽니다. 처음부터 방에 TV가 없고 손자 손녀가 놀러온다면 가정부를 할 수 없다고 큰소리치더니 이제는 효율적으로 식기 세척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 번에 4인분을 돌려야 한다며 개수를 맞추기 위해 카피 잔 받침에 채소를 올리고 과일 접시에 파스타를 담아내는군요. 게다가 자기 딸에게(조는 미성년자이면서 미혼모랍니다.) 10만 리라짜리 드레스를 입혀야 된다며 고집하기도 하고 코가 마음에 안 든다며 성형을 해야겠다고 우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럭비공 같은 아가씨 마음이 어찌나 여리고 순한지 모릅니다. 세탁기도 돌릴 줄 모르는 마르게리타와 자유를 느끼고 싶다며 한밤중에 외진 길을 걷다 종종 수상한 사람으로 오해받는 조반니노에게 조는 의지가 됩니다. 이들이 벌이는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어찌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귀여운지 잔잔한 미소가 떠나질 않습니다.
조반니노 과레스키는 기실 ‘조’를 통해 할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웃음을 주고도 싶었겠지만 그는 급변하는 사회에 일침을 놓고 싶었던 겁니다. 진보와 위생이라는 이름 하에 하천의 물이 마르고 더위는 심해졌습니다. 소비사회는 정신세계를 물질세계로 대체해 버렸고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자연은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TV와 연예인, 춤과 노래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데 화려한 생활만 좇으려 하고요. 그런데 40여 년 전의 과레스키의 염려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의 ‘현대 문명 비판’이 풍자와 해학으로 변주된 것인 바로 이 《까칠한 가정부》입니다. 조는 그러니까 바로 과레스키의 비판의 대상인 것이죠. 하지만 조에 대한 과레스키의 시선은 분명 애정어립니다. 사랑스럽지만 걱정되고 한편 기대도 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과레스키의 시선이지요.
젊은 세대에 대한 걱정과 사회에 대한 비판이 좀 과한 것 아니냐고요? 그렇게 생각했다면 당신은 10대나 20대군요! 저도 그런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염려에 동조하게 되더군요. 아마도 제가 20대로 살고 싶은 30대 엄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조반니노 과레스키가 살아있다면 지금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을까요? 끝나지 않은 ‘카코키노 이야기’(과레스키가 아들딸에게 들려주었던 모험 이야기로 손자 손녀의 요청에 카코키노는 다시 살아나 모험을 계속하게 되지요.)를 매듭짓고 있을까요? 그의 통쾌한 풍자가 그리워지는군요.
까칠한 가정부
조반니노 과레스키, 김운찬 옮김,
부키
2007년
9800원
글 _ 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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