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 권일영 옮김
문학동네
성실하게 리뷰를 써 볼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려고 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성실한 리뷰라는 것은 책의 느낌을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 잘 어우러지게 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리뷰를 쓰기전에 마구잡이로 생각나는 것들을 정리도 하고 이야기의 대략적인 흐름도 정리할 겸 책을 한번 쓰윽 훑어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지 망설여진다. 낙원은 그렇게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전작 모방범의 소문에 힘입어 낙원은 출판전부터 많은 이들에게 부풀어오른 기대감을 갖고 기다리게 만들어버렸다. 너무 많은 이들이 극찬을 하는 바람에, 내용이나 취향에 대한 분석없이 '읽어보니 별로더라'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러한 소수는 다시 모방범을 극찬하는 이들에게 묻혀버렸다. 그래서 모방범은 전설처럼 되어버렸다. 그러한 전설이 있고난 후, 9년. 모방범 예찬론자인 나로서는 낙원에 대한 기대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낙원을 읽기 전 어느 누군가처럼 낙원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기 위해 모방범을 다시 훑어줘야 할까..도 고민해봤었다. 하지만 낙원은 모방범의 연작이 아니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마에하타 시게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씩 모방범의 기억이 떠오르려 했다. 구체적이지는 못하고 막연한.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모방범을 읽지 않은 이들이 낙원에서 소외되지는 않겠구나, 라는 막연함도 생겨났다.
이제 내 기억속의 모방범에 연연해하지 말고 낙원으로 이끄는 시게코에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사건의 시작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교통사고로 죽은 아들의 그림이 그의 죽음 이후에 밝혀진 살인사건을 예지한 것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이 불가사의한 일의 해결을 위해, 아니 어쩌면 죽은 아들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시게코를 찾아간다. 소년의 그림은 회색피부를 가진 긴머리의 소녀가 집 아래 갇혀있듯 누워있는 그림이고, 소년의 죽음 이후 그가 그린 집 풍경과 같은 집에서 화재가 발생한 후, 16년전 가출했다고 알려진 소녀가 사실은 부모에게 살해되어 집 아래 묻혀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나는 사실 낙원을 읽기 시작할 때, 책의 앞부분은 '소년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에서 시작하여 장르문학이라는 거창함이 무색해지게 미야베 미유키의 SF식 추리소설이 되는 건 아닌가 싶은 마음에 기대에 못미치는 낙원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걱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가 누군가. 미야베 미유키의 이야기는 하나의 그럴듯한 사건을 만들어내어 멋지게 해결하는 탐정 추리소설이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나는 그녀의 작품을 읽다보니 그걸 느끼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녀의 이야기는 '사건을 이해하고 풀이해내는 것'이 중심이 아니라, 그 사건을 둘러싼 사회와 배경, 사건과 관계된 사람들의 관계성...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 말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낙원이 왜 낙원일까,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그저 '모방범 그 후 9년'이라는 미끼에만 홀려 무작정 책을 읽은 것인지도 모르지.
낙원이 왜 낙원인가,를 느껴보게 될 즈음, 모든 이야기는 해결을 향해 치닫고 독자들을 위한 팁처럼 상투적이지만 마음 따뜻해지는 에피소드도 하나 등장한다. 왠지 '모두가 해피엔딩' 같은 통속소설의 결말이 느껴지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런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따뜻해지고 뭔가 울컥하는 나의 마음은 결코 통속적이지 않은 것이다.
한 가족구성원이 서로에게 갖는 의무와 사랑,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잠시 먹먹한 느낌이 나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지만 결코 암담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낙원의 의미를 되새겨보면서 그 모든 것을 성찰해보게 되고 희망을 갖게 된다. 이것이 미야베 미유키의 이야기가 갖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힘을 내서, 당신의 인생을 살면서, 행복해질 수 있어 (2권, 383)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불행에 빠져있기만 하지 않고, 과거의 잘못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태초에 지상낙원이 있었고 인간의 잘못으로 낙원에서 추방당했지만 신은 또다시 인류를 낙원으로 인도하고 있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루피(francis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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