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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내려올때 보았네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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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올 때 보았네- (이윤기 산문집)  
지은이 이윤기
출판사 비채

 
나한테는 못된 버릇이 하나 있다. 너무 유명하다 싶으면 외면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도 너무 유명세를 타면 보기 싫어지고 너나 나나 할것 없이 모두 입고 다니는 옷 스타일은 쳐다보지도 않게 된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신화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던 나로서는(그렇다고 내가 신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신화 이야기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파문을 불러일으킨 "이윤기"라는 사람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인지 그냥 그 사람 책은 읽어보기가 싫었다. 그래서 이날 이때까지 이윤기님이 쓴 그리스.로마 신화는 한권도 보지 않았다. 참 웃기는 심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만나게 된 이윤기님의 산문집, <내려올 때 보았네>.  어라. 이 사람이 수필도 썼네? 호기심이 들었다. 원래 소설보다는 수필을 더 좋아하는지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통째로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설사 어느 정도 각색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진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난 좋았다. 그래서 [이윤기]라는 이름에 대한 거부감이 한쪽에는 아직까지 자리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고은 선생님의 시에서 제목을 빌려왔다는 [내려올때 보았네]는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는 앞부분이 생략되어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환경에 따라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한다. 내가 구두를 사려고 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구두만 쳐다보게 되고 내가 임신을 하면 거리에 임신한 사람만 눈에 뜨인다. 그렇듯 우리네 인생에서 특정 환경이나 사건에 부딪히기 전까지는 보지 못한 것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윤기님은 그런 이야기들을 뱉어내고 있다. 갑자기 깨닫게 된 사실, 즉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언제 보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작가가 직접 말하는 언어와 글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글에 대해 신뢰를 갖게 만들었다. 소통을 원하는가? 과시를 원하는가? 작가의 글과 말은 과시를 위한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어려운 말을 씀으로써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작가는 말한다. 그게 바로 과시하기 위한 말이요 글이라는 것을.

이 산문집에는 이윤기님의 신념이 담긴 글도 있지만 그 분의 인간적인 모습에 독자들이 웃을 수 있는 빌미도 제공해 주고 있어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잔디깍이 기계가 실린 트럭을 몰고 가다 잔디깎이 기계를 고속도로에 떨어뜨리고 뺑소니를 고민했던 이야기, 술과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는 이야기, 개고기를 몰래 먹기도 했다는 이야기 등,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소재들에 나는 다시 한번 감격했다.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왜 [이윤기]라는 이름 석자가 그렇게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는지를. 이제 그의 그리스/로마 신화 이야기를 읽어볼까 한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내려올 때 볼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말이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오즈(flyo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