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A.타타글리아
권경희 옮김
FOR BOOK
어릴 때 외가댁에 가면 철새 떼들을 많이 보았었다. 외가는 지금도 철새들의 서식지로 유명한 국내 최대의 늪지인 우포늪이 있는 창녕군이다. 그 당시엔 겨울에 고개만 들면 하늘을 나는 철새 떼 보는 건 길바닥에서 돌맹이 찾기보다 쉬웠었다. 서울에 사는 지금은 참으로 귀한 풍경이지만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내 기억 속에 있던 그 당시에 본 새들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특히 새들이 물 위에서 날개를 퍼드득 거리며 날아올라 V자 대열을 이루며 날아가던 그 모습 말이다.
언제쯤이었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철새의 이동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던 적이 있다. 그 철새가 기러기였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날 만큼 오래 전의 일이긴 하지만, ‘윙’을 읽으면서 그 때 보았던 다큐멘터리가 자꾸 떠올랐다. 조금씩 그 영상들과 나레이터의 설명까지도 기억나는 듯 햇다. 그 때 내가 느꼈던 대자연에 대한 경이로움 까지도 말이다. 아마도 ‘윙’을 읽으며 철새들의 대이동에 관련하여 더 많이 와 닿은 것은 아마도 이런 내 유년의 추억과 작은 지식이 보태어져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xml:namespace prefix = o />
여기 ‘고머’라는 어린 기러기가 있다. 따뜻한 이 호수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한 번도 겨울을 맞아본 적이 없다. 다가오는 겨울을 맞아 자신들의 무리가 대이동을 하기 위해 ‘큰마음’을 공부하는데 왜 그래야만 하는지 그는 거부감이 든다. ‘위대한 이동’이라고 하는 대이동을 위해 아직 위대한 이동을 경험하지 못한 기러기들은 큰마음을 배우기 위해 다른 기러기들을 찾아 다니며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고머는 이마저도 마땅찮았다. 위대한 날개(the great wing : 이 책의 영어제목) 속에서 이탈하지 않고 날기 위해서는 이 모든걸 배워야만 한다는데, ‘위대한 이동’은 또 무엇이고 ‘큰마음’은 또 무엇인지 고머는 알고 싶은 마음조차 없다. 심지어는 대이동을 하지 말아버릴까 하는 생각까지도 든다.
그 어린 ‘고머’가 구스멘토, 그랜드구스, 그랜파 등의 선배나 어른 기러기들에게서 큰마음에 대해 배워나가는 것이 책의 전반부이다. 난 책의 앞부분을 읽을 때는 조금은 지루한 생각도 들었었다. 자기계발서라고는 하지만 너무 친절히 색상까지 달리하며 프린트 해 준 좋은 말들과 사진 위에 따로 인용해 둔 문장들이 고맙기보다 살짝 거스르기도 했었다. 하지만 점점 읽어내려 갈수록 책으로 빠져들어갔다.
특히 대이동을 위해 기러기들이 날아올랐을 때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심장은 조금씩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맞바람을 가르며 나는 기러기 떼, 한마리 한마리의 기러기가 모여 큰 기러기모양의 날개를 만들어 날아가는 모습, 낙오자가 생기려 할 때면 선두에 선 기러기가 살짝 거대한 날개를 기울여줘 그 날개의 끝자락에 붙어 다시금 올라올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게 하는 모습. 이 글을 쓰는 순간조차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어쩌면은 내가 ‘다시 태어날 때 동물로 태어난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나요?’라는 질문에 ‘새’라고 대답하는 사람이어서 이렇게 더한 감동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날개가 없는 인간이기에, 맞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나는 느낌을 알진 못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정말 하늘을 날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고머’가 대이동을 하면서 느끼는 것들을 통해 모처럼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단지 나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우리’를 위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나만이 아닌 우리 공동체 속에서의 나라는 존재와 그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어주었다.
기러기는 천마일이 넘는 거리를 이동할 때 리더를 하는 새가 힘들고 지치면 서로 바꿔가며 리더를 한다고 한다. 계속 그렇게 번갈아가며 리더를 하며 목적지까지 날아간다. 본능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새들의 길잡이 능력, 그네들은 그렇게 천마일 이상을 날아 그들의 새 보금자리로 이동한다. 리더새의 날개짓의 힘을 받아 뒤에 따르는 새들이 조금은 쉽게 날 수 있도록 V자 대열로 난다고 한다. 그렇게 날아가다 다른 기러기 떼들과 합치기도 하면서 계속 대열을 유지하며 갈 곳을 찾아 간다고 한다. 낙오하는 새가 생기지 않도록 날개를 기울여 도와가며 계속 앞으로 앞으로 날아간다. 흐린날도 있고 태풍이 오기도 하고 번개가 치기도 할텐데 묵묵히 살 곳을 찾아 떠난다. 모두 함께 서로 용기를 북돋아주며 끝까지 말이다.
문득 우리의 아름다운 땅 태안반도가 떠오른다. 아마도 그곳에는 내일도 모레도 서로 용기를 불어넣어가며 열심히 방제작업을 할 우리들이 있을 것이다. 방제물품을 보내주는 이, 직접 봉사하는 이, TV보며 마음아파하는 이, 우리도 지친 태안반도를 위해 잠시 거대한 날개를 낮추고 있는 건 아닐까.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봄이엄마(ojt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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