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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윤영수를 만나다 : 내 안의 황무지, 내 여자친구의 귀여운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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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독백적인 여자들의 소설에 질려 여성 작가는 뒤로 미루는 습관이 생겼다. 그들의 소설은 너무 아팠다. 그들의 아픈 속내는 나의 딱지 앉은 상처도 꾹꾹 눌러대는 힘이 있어 일부러 멀리 돌아왔다. 그러다 만난 윤영수. 카멜레온 같은 그녀 앞에서 나는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윤영수, 민음사, 2007년, 16000원


  참 놀라운 작가다. 그녀의 열 가지 이야기는 말 그대로 십인십색이다. 윤영수라는 사람이 자아낸 날실과 씨실은 거칠기도 하고 보드랍기도 하고 몽글몽글 털 뭉치가 만져지기도 하는 각기 다른 실로, 그 실로 짠 가족이라는 윤영수만의 옷감은 기대한 대로 세상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을 자랑한다.

  윤영수의 이번 단편집은 《내 안의 황무지》와 《내 여자친구의 귀여운 연애》 두 권이 묶여 있다. 어두운 분위기의 단편들과 재치발랄한 분위기의 단편을 다섯 편씩 나누어 두 권으로 엮었다곤 하지만 두 편을 제외하곤 대체적으로 무거운 편이다. 무거움은 때론 섬뜩함으로 다가온다. 그 무거움이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감춰진 우리들의 잔인한 본성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노처녀 딸 사이의 알력다툼이 결국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인소극〉이나 결혼식에서 만난 일면식 없는 두 여인의 허풍이 소문이 되고, 소문은 사실이 되어 신혼부부를 갈라서게 만든 〈윗마을 혼인잔치〉는 머리끝이 쭈뼛 서는 두려움을 준다. 한 남자의 자격지심과 질투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 어떤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지 보여주는 〈새떼〉도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게 한다. 아들을 잃고 소설 속에 갇혀 살다 다시 세상에 나온 여자는 유일한 가족인 남편과 친정엄마가 더 이상 친밀한 가족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내 안의 황무지〉는 삭막하고 메말라 있다.

  모두 빠지지 않는 완성도를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유일하게 밝은 분위기인 〈내 여자친구의 귀여운 연애〉와 〈광고맨 강과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편애한다. 우선 재미있고 작가만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책에 실린 서평 말마따나 ‘가족이라는 연옥’에서 빠져나온 두 이야기는 절망과 치부만을 보여주었던 다른 이야기들에 비해 앞으로 나아갈 말미를 남겨놓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원만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분위기가 밝고 어둡고를 떠나 책을 읽는 내내 사방이 막힌 벽면에 둘러싸여 어디도 도망갈 수 없는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 모습은 다를지언정 이야기 속 주인공이 나와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멀리 돌아볼 것도 없다. 누군가의 사정은 생각해보지도 않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안줏거리 삼고, 알 수 없는 자격지심에 또 다른 누군가를 질투하여 그 사람을 곤란에 빠뜨리게 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던 이가 누가 있겠는가. 

나는 윤영수를 내가 아끼는 작가 목록에 이미 올렸다. 그것도 맨 위에. 당분간 순위는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출판사 역시 윤영수라는 작가에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요즘 책값에 비해 다소 높게 책정된 가격만 보아도 그렇다. 과감한 시도를 한 북디자인과 책표지부터 포장까지 한눈에 보아도 적잖은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책이 더 예쁘고 아끼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글_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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