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을 봐야 할 사람은 누구?
너맛좀볼래
윤병훈 지음
다밋
발령을 받고 교과지도도 마찬가지였지만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생활지도' 부분인 것 같다. 흡연을 하다 걸린 아이들을 무턱대고 혼내는 것도 효과적이지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흡연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이야기해주려니 근거가 부족한 듯도 하다. 우리학교 학생이 아니어도 무단횡단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 한 마디씩 해주고 싶지만 뻔한 이유가 아닌, 그 아이가 납득할만한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망설여진다.
요즘 아이들은 참 '강'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주눅들지 않고, 내가 학생시절 선생님을 무서워했던 것처럼 교사를 겁내지 않는다. 그만큼 아이들의 마음을 얻기도 힘들다. 이번 수업 시간에 말 잘 듣고 하자는대로 잘 따라와줘서 '이제 아이들도 마음을 열었구나' 생각하고 그 다음 수업에 들어가면 '저 사람은 누구야'라는 눈빛이 반복된다. 아이들과 마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항상 그들과의 관계는 처음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드는 생각은 대한민국 고등학생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입시와 성적에 짓눌려 있으며, 특히 고3 아이들은 생기하나 없이 굳은 표정으로 묵묵히 자신의 할 일(수능공부)을 한다. 다루기 힘든 반에 들어가면 나도 때때로 성적으로 아이들을 협박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면 순간적으로 반 분위기가 좋아지고 조용해지지만, 학교 다닐 때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을 아이들에게 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괴감은 심해진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네모난 교실에서 정해진 시간까지 매번 50분 씩의 수업을 들으면서도 과연 그들이 그 시간동안 온전히 얻어가는 것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요즘들어 자꾸 든다. 체험학습과 경험, 실제적인 지식을 많이 강조해가는 추세이기는 하나 아직도 우리의 교육은 아이들의 속마음보다 겉모습과 지켜야할 도덕에 너무 얽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특성화 대안학교인 양업고의 교장인 윤병훈 신부가 학생들을 교육하면서 겪은 10년 동안의 기록이다. 한국사회가 아이들에게 너무 지식보급의 교육만 강조해 온 것을 자성하고 비판하며 체험위주의 교육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으려고 애썼다. 그는 이 책에서 아이들이 반항하는 데는 모두 이유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기존의 윤리관에 너무 물들어버린 어른들이 아이들의 이유있는 반항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다루려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양업고에 다니고 싶어하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을 인식하여 무조건 일반계 학교로 전학시키고, 혹여 자기 아이가 작은 상처라도 입을까 과도한 자식사랑을 자랑하는 부모들을 지켜보며 교장 신부님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교사와 부모에게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아이들의 반항은 필요하다는 그. 책의 제목인 '너 맛 좀 볼래'는 어른인 우리들이 아이들에게 내뱉는 말이 아니라 아이들이 변화하려 하지 않는 어른들에게 외치는 함성인 것이다.
신부님이 교장인 덕분에 책 속에는 많은 성경구절과 좋은 말씀이 가득 담겨 있다. 그러나 어쩌면 종교관이 다른 사람이 읽는다면 그다지 감명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도 성경말씀에 그리 심취해있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성경말씀은 우리를 구원한다고 믿는다. 특히 힘이 들 때, 자신 앞에 세워진 벽이 너무 클 때 불현듯 다가오는 성경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도저도 다 떠나 대한민국의 교육을 걱정하고 아이들을 생각하는 부모와 교사들이 읽기에는 괜찮은 책이다. 비록 고난은 이어지나 정해진 가치를 중요시하지 않고, 아이들 자체를 바라보도록 충고하는 책. 지적인 교육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보이는 것만을 믿지 않고 항상 자신을 되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그치지 않는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분홍쟁이(yulianna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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