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쫓는 스파이
방현희
민음사
만만치 않았던 소설. <달을 쫓는 스파이>
휴. 드디어 책장을 덮었다. 보통 소설은 빨리 읽는 편인데, 이 소설은 꽤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렇다고 두꺼운 책도 아닌데 말이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때 제목도 그렇거니와 내용도 흥미로워 보였다. '광개토대왕릉 도굴 사건을 둘러싼 박물관 학예관들의 사랑과 야망, 그 처절한 음모한 배신'이라는 문구가 그러했다. 어떤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하며 책장을 펼쳤다. 은연중에 나는 영화 <미이라>를 상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광개토대왕릉 도굴사건을 보며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여러명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중 누군가가 광개토대왕릉 도굴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을 개기로 펼쳐지는 모험담, 혹은 처절한 음모와 배신, 그리고 그 안에 싹트는 로맨스..그런 내용을 흥미진진, 스릴있게 그려내보고는 책장을 펼쳤던 것이다.
그러나, 오 마이 갓! 이내 나는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상상과는 다른 이야기에 며칠동안 책과 씨름을 했는지 모른다.
<달을 쫓는 스파이>는 참 이상한 소설이다. 빠르게 읽자면 단숨에 마치겠지만, 곱씹으면 읽자면 며칠이라도 부족하다. 만만치 않다. -소설가 김별아씨의 말이다. 이 책이 내게 딱 그랬다.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게 '너무 먼 당신'이었던 것이다. 사실, 내용이 그렇게 난해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지루했던 것 정도. 처음엔 그랬다. 너무 지루해서 책장을 덮었다 펼쳤다를 반복하며 책에 집중 할 수가 없었다. 사건의 전개과정도 너무 느렸다. 현중과 홍주의 사랑이야기를 들여다보며 이런 내용들이 이렇게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왜 사건이 터지지 않는지. 도대채 광개토 대왕릉 도굴사건은 언제 터지며, 어떻게 전개될건지 내 관심은 오로지 거기에만 가 있었다.
그리고, 소설의 초반 현중이 홍주를 탐닉하는 이야기가 벗어나자, 내가 궁금했던 내용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9년전 현중은 광개토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분을 조사하다가, 벽화 네점과 와당 세점을 훔쳐오게 된다. 그러나 그 절도가 잘못된 것이었기에 고민하다, 처남인 경재에게 사실을 이야기 하게 되고 경재의 도움으로 절도품을 장물로 넘기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장물이 박물관으로 흘러들어가게 된 것이다. 처남과 장인은 현중의 죄를 씻어내기 위해 공모자가 되고 장물을 취득하게 된 박물관 역시 조직적 범죄에 연루된다. 한순간의 욕심, 명예를 위한 잘못된 선택은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조직의 죄로 확대되게 된 것이다.
이제 현중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는 이 위기를 잘 넘기게 될까? 장물로 들어간 물건을 역추적하면 그것이 어디에서 들어오게 된건지 밝혀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읽어나갔는데 사건의 전개과정이 생각보다 스릴있다거나 긴장감이 넘치지는 않는다. 아마도 내가 영화를 많이 본 탓이리라. 어쩌면 이런 결과가 현실과는 더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현실과 타협하는 그렇고 그런 인간들.
처음에 이 책에 관심을 보였던 것은 '광개통대왕릉 도굴사건' 때문이었지만, 상상했던 내용이 아니었기에 나의 관심을 다른 것에 쏠리 수 밖에 없었다. 바로 홍주라는 인물이었다. 이 책은 현중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홍주라는 인물에 더 흥미를 갖게 된다. 초반엔 그렇지 않았다. 그녀에 대해 궁금하긴 했지만, 그렇게 끌리진 않았다. 뒷편에서 홍주의 친구가 홍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홍주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녀의 거짓말을 떠올려보며 그녀의 상처를 가늠해 본다. 홍주가 되보지 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자신의 상처가 깊은만큼 그 상처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모습을 상상하자, 그녀가 안쓰럽기도 했다. 예전에 읽은 <내남자>가 생각이 났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딸, 이해할 수 없는 그녀를 보며, 복잡했던 심정이 홍주라는 인물에게도 비춰진다. 친오빠를 사랑한 여동생. 근친간의 사랑은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얼굴을 찌푸리면서 그들을 나무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웬지 모르게 안쓰러운....홍주의 가슴께에 길게 난 상처는 <주홍글씨>를 떠오르게 한다.
처음엔 지루하고 지루했다. 사건의 전개과정이 느리다느니, 꼽씹으며 읽어도 머릿속에서 뒤엉켜 버린다느니 말이 참 많았던 소설이다. '만만치 않아'를 뇌까리며 그렇게 읽었던 소설 <달을 쫒는 스파이>는 후반으로 갈 수록 드디어 빛을 발한다. 그렇다고 크게 '이거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제서야 책장을 넘기는 손과 마음이 편안해졌다고나 할까? '사건'보다는 '작품의 인물'에 초점을 두고 읽어내려간 소설이다.
현중과 홍주 외에 흥미롭게 지켜본 인물이 승기였다. 현중이 승기의 뛰어난 논문주제를 훔친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승기가 연정을 품었던 홍주를 훔진 현중에게 승기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그 둘의 대화를 보며 느낄 수 있었다. 자신에게서 자꾸만 무언가를 빼앗아간다며 부당하고 말하는 승기.
" 어제 실장님이 그러더라구요. 노력한 시간과 성공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나는 기어코 되찾고 말 거에요. 내가 가져야 했던 것들, 돌려 받을꺼에요. 그래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것 아니겠어요? 다시는 선배와 함께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흐흐" (p177 中)
현중이 그에게 그렇게 매번 중요한 것을 빼앗아 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마도 홍주를 계기로 승기는 현중을 더 주의깊게 살펴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보다 앞서는 그를 보며 자꾸만 자신의 것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계기가 어찌되었든 승기의 마음을 알것 같기에 안쓰러웠고, 부당한 것을 참지 못했던 승기를 응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그렇게 응원을 했던 승기마저 결국은 현실과 타협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웬지 모르게 배신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그것이 현실인것을.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부당한 것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을 믿고, 그들을 응원하련다.)
며칠을 붙잡고 있던 책이다. 한번 읽고는 무슨 내용인지 몰라 다시 읽어가며 머릿속이 복잡해 '아이고'를 연발했던 책이다. 책장을 덮은 지금도 나는 작가가 하려고 한 메세지가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만만치 않은 책이다. 다만, 현중, 홍주, 승기 등을 만나고 그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속에서 나는 현실의 또 다른 모습을 본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실타래처럼 뒤엉킨 생각들을 풀어내려면 아마, 내게 더 시간이 필요할듯 싶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별이(rubiya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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