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적 사랑
50년을 함께 산 부부가 서로가 없는 삶이 싫어 함께 죽음을 맞이하고 이들의 손녀가 직접 쓴 이야기이라기에 사실 나는 제목과 간단한 책 소개를 읽고 무겁지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일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은 나의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죽음을 계획한 날 노부부의 하루와 그들을 좀 더 알고 싶어하는 손녀가 사람들을 만나 조부모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과정이 교차되어 전개되는 이 책은 굉장히 차분한 어조로 사실적인 이야기들을 펼치고 있다.
헝가리 유대인이었던 두 사람은 한 음악회에서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기에 유대인이었기에 남자는 끌려가게 되고 여자는 서류를 위조하여 도망가게 된다. 다행히 그들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게 되었고, 그 후 공산주의자가 되었으며, 남자는 한국전쟁 때 북한에 파병을 나가기도 했었고 부다페스트에서 봉기가 일어나자 덴마크로 망명했다.
이 부부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말하고 싶지 않은 아픈 과거이다. 남자는 죽지 않기 위해 걸으면서도 잠자는 법을 배워야했고, 여자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서랍장에 아이를 숨기기까지 해야 했으며 언제 올지 모를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야 했다. 아들과 딸을 둔 부부였지만 그들은 서로만을 의지하며 50년을 살았다. 열 살 이상의 나이 차이로 남편은 늙어 병들었지만 부인은 건강했음에도 그들은 혼자 남는 것이 두려워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사실 이 책에서 그들이 유대인이고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나에겐 그것보다 둘이 함께 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 자식이 있고 손자손녀가 있음에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은 남편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아내. 남편이 없는 삶이 두려워 스스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 내가 바라는 모습과도 같아 마음이 아팠다.
결혼하기 전에는 부모님이 중요하고 동생이 중요했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나 스스로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느끼며 결국엔 자식도 필요없다는 생각에 여전히 둘만의 삶을 꾸려가고 있기에 가끔 나 혼자 남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가 참 많다. 아직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어린 나이이지만 언젠가 죽게 된다면 나도 이들처럼 남편과 나란히 한 침대에서 죽고 싶다.
유대인으로서 살아가기 어려운 시절에 살아남아야 했기에 세상에 믿고 의지할 사람이 남편 밖에 없었던 여자. 자신의 나약함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늘 당당한 모습으로 아픈 과거를 숨기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극적인 부분도 별로 없고 전쟁의 잔혹한 장면도, 부부의 행복하거나 가슴 아픈 사연도 등장하지 않으며 잔잔히 전개되는 이야기이지만 책을 덮을 무렵엔 눈에 눈물이 고이고 가슴이 저려오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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