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디어 걸
실비 테스튀
문학동네
가족의 재발견,더불어 어릴적의 나를 만났던 시간~!
프랑스가 인정하는 대표적 연기파 배우, '실비 테스튀'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라는 광고띠의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사실, '실비 테스튀'가 누군지 잘 알지 못한다. 내가 끌렸던건 '자전적 성장소설'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나 <아홉살인생> 같은 성장소설을 읽고, 어릴적 나를 만날 수 있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성장소설을 읽을때면 나 역시 한뻠 성장해가는것만 같아 웬지 모르게 뿌듯해지곤 한다. 어디 그것뿐이랴. 어릴적 동심으로 돌아가서 그때의 나를 만나고, 그때의 동생들과 가족들을 만나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피씩 웃게 된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좋았던 추억들도 많았던 것 같다. 게중에는 기억나는 사건도 있고, 이미 내 머릿속에서 지워진 사건도 있지만, 그때를 떠올려보며 왜 이렇게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다.
학교앞 정문을 나서면 동생들이 더러워진 옷을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습이 생각난다. 당시는 웬지 그게 부끄러워서 이렇게 기다리지 말든지, 아니면 옷이라도 깨끗하게 입고 다니라고 투덜되었던것 같은데...참 이상도 하지. 지금은 그 동생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그렇게 사랑스러울수가 없다. 먹을것이 없어 주방을 뒤적거려 발견한 라면스프 한개를 넣고 스프국물을 떠 먹던일, 간식용 쥐포와 소세지 (당시 쥐포와 소세지가 50원이었던걸로 기억한다.)를 사서는 엄마 흉내를 낸답시고 후라이팬에 둘러 반찬을 만들어 먹었던 일, 거의 반강제적으로 서로에게 편지를 쓰게 하고 주고 받았던일 (그 편지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삐뚤삐뚤한 글씨의 그 편지는 항상 내용이 비슷하다. "언니야, 우리 이제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자. 착한 동생이 될께" 뭐 이런편지를 받았던것 같은데 나 역시 비슷한 편지를 썼겠지.안타까운건 나만 동생들의 편지를 소장하고 있다는거. 내 편지는 동생들이 어디에 놔뒀는지 모르겠다. 그때의 나도 만나고 싶지만, 가끔 꺼내보는 동생의 편지와 엽서는 날 행복하게 한다. ) 등등 지금 생각해보면 피씩 웃게 되는 그때의 나를 떠올려본다.
<마이 디어 걸>에 나오는 세자매를 보자, 자연스럽게 어릴적의 나와 동생들이 떠오른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사고도 참 많이 쳤다고 하던데, 세 자매들의 여러가지 사건사고를 들여다 보며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더랬다.
이 책의 시작은 세자매가 만우절날 이모에게 거는 한통의 전화로 시작된다. "도와줘요. 도와줘요.'그남자'가 왔어요"란 막내의 멋진 연기에 수화기 너머로 탁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전화가 끊어져 버린다. 놀란, 이모가 자매에게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만우절 이벤트로 거짓말을 했을뿐인데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그녀들은 어떡하나 긴장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이모가 달려오고 그남자를 찾는 이모...다행스럽게 코린(첫째)의 대답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유쾌하고 밝은 문체라 술술 읽히는 책이다. 게다가 만우절 사건부터 벌어진 사건을 보며, 또 무슨 일들을 벌일지 눈을 빛내면 읽었더랬다. 그러면서 도대체 그 남자가 누구이길래 이모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궁금했다. 그 의문은 얼마지 않아 풀렸다. 그남자는 바로 세자매의 아빠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빠가 온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 걸까? 그 남자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건가? 이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게 그렇게 큰 일인건가? 이모가 이렇게까지 나오는것을 보면 역시 그 남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 행동하나만으로도 이런저런 상상을 해가며 책에 빠져들게 된다.
이 책은 세 자매 코린, 시빌, 조르제트와 엄마 안나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여러가지 사건사고들을 보며 가족이란 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처음 책장을 넘겼을때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라 가볍게 읽어나간 소설이었는데, 뒷부분에 이르러 (아빠의 등장) 웬지 모르게 가슴이 짠해지고 먹먹해져옴을 느꼈다. 만우절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듯 그 가족에게 아빠란 존재는 악당, 나쁜사람, 집으로 찾아오면 안되는 존재였다. 그랬는데 막상 만나본 아빠는 생각과는 너무나 달랐다. 많은 세월이 흐른후 그런 아빠를 만나면 어떤 느낌일까?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져온다. 특히나 엄마에게 아빠와의 만남을 보고하는 장면, 엄마를 위해 거짓말을 하며 이야기를 하는 시빌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찡해져왔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실화가 아닌 소설이다. 하지만, 자전적 성장소설이라서 그런건지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일상의 사건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읽으며 마치 내 일인양 빠져들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가슴짠함을 전해준 <마이 디어 걸>을 보며 가족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어릴적 나를 떠올려보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별이(rubiya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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