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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옛날에 내가 죽은 집




옛날에 내가 죽은 집
히가시노게이고 지음
창해 2008.11.27


섬뜩하리만큼 붉은 가시덤불 사이속의 음산하고 추한 검은 집.

그곳을 찾아가는 한 사람의 뒷모습에는 거길에 들어갔을 때 알게 될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한 비밀의 두려움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듯 하다. 손에 잡은 촛대는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책 표지를 보자마자 단번에 알 수 있다. 두려운 것이다. 저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내가 죽은 집'은 제목과 표지부터가 곱지 않다.

난 이 으시시한 세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포기할까, 겁이 너무 많으니까 이걸 손에 대면 난 또 잠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

미스테리나 스릴러물은 왜 나에게만은 이토록 다가가기 어려운 대상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이번엔 용기를 내어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난 읽고 싶다. 왜?

그건 이 책이 하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가시노 게이고. 그는 이미 일본, 한국 작가들에게 정평이 나있는 거물급 스릴러 저자이다. 이름을 수없이 들으면서 '용의자 X의 헌신' , '백야행'  등의 대표작들에게 관심을 갖아본 적은 있지만 쉽게 선택을 내릴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는 작품이라면 당연히 봐줘야 하는게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겐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겁많은 내 탓으로 포기했었다.

영화도 공포영화를 못보는 지라 아무리 사람들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공포물도 난 절대 보지 않는다. 하지만 책은 비주얼을 내 머릿속에서 다루기 때문에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용기내었다. 그래서 나의 첫 만남으로 이 작가. 바로 게이고의 최신작인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을 선택하였다.

 

이 책의 시작은 고등학교때부터 사귀였던  애인인 사야카가 7년만에 갑자기 주인공에게 전화를 걸게 되면서 사건은 벌어진다. 그것도 딸이 있는 결혼한 옛애인이 무슨일로 갑자기 보자고 하는것일까라는 궁금증얼 먼저 던지기 시작한 전개는 아주 탁월해 보인다. 둘의 만남이 심상치 않은 미묘한 관계속에서 진행되는데, 미스테리는 그녀의 아버지, 열쇠 그리고 지도에 있었다. 내가 아는 수많은 책들이 첫 시작이 다소 지루하게 배경 설명이나 관계 설명으로 시작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전혀 다르다! 둘의 관계와 그녀가 갖고 있는 비밀의 과거를 해결하려는 움직임부터 낱낱히 파헤치고 있어서 가려운 구석을 아주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빠른 속도감, 빠른 전개가 표지에 담겨있던 과거의 집으로 독자들을 블랙홀처럼 삼켜버리고 만다.

 

  아버지의 열쇠로 찾아간 집에서 발견된 이상한 흔적들이 줄을 짓는다.. 분명 23년전의 집인것이 분명한데,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살아있던것 같은 방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집안의 모든 시계들이 가리키는 11시 10분.  최근에 구입한것 같은 헌책들. 그리고 방에서 발견된 유스케의 일기장...

그들은 이런 모든 요소를 종합하면서 본격적으로 추리를 시작한다. 어린 아이 유스케와 일기장에서 아버지라 불리우는 게이치로 , 그리고 미스테리의 한 남자  '그녀석'의 관계를 알아내기 위해서  일기장에 써 있는 내용과 편지들을 살펴보게 된다. 너무나도 놀라운 것은  교묘히 흐르는 사건들의 마치 피가 온몸을 스산하게 돌아다니 듯 너무나 자연스럽고 생동감 넘친다는 것이다. 이렇다할 액션신이나 억지로 벌려지는 스케일 큰 사건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구 쫓아 갈 수 밖에 없는 책을 만난건 처음이였다.

 

  점차 밝혀지는 진실의 언덕위에 학대와 자살, 집착, 번민 등의 감정의 잡풀들이 살아서 꿈틀거린다. 무덤같이 우울하고 비밀스런 이 집의 사건을 찾고있는 주인공과 시작의 그녀, 사야카의 관계도 이 책을 읽으면서 얻는 또다른 재미이다. 그리고 딸에게  비이상적인 행동을 하는 사야카의 정신적인 원인을 찾는 열쇠이기도 하다.

 

복잡하고 미묘하고 혼란스럽다. 책을 다 읽게 되면 멍 한 자세로 오랜시간을 유지해야만 한다. 이렇게 흡력이 뛰어난 책들도 있었구나 하는 놀라움과 함께 난 한동안 책의 표지만을 뚫어져라 지켜보았다. 예상을 뒤엎는 멋진 반전과 비참하고 쓸쓸한 가정 문제라는 것이 온 머리를 정신없게 만들었다. 아.. 당분간은 다른 책들에게서도 이런 기대를 할 것 같아서 걱정이다.

 

어떤 분이 그랬다. 이 책을 통해서 이 저자의 팬이 되었다고.. 겁이 많아서 나의 경우엔 되지 않을꺼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 책을 만나기 전엔 말이다.

하지만 바로 찾고 싶어졌다. 이분의 방대한 저서들을 읽고 스토리텔링의 긴밀성과 흡입력을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다. 욕구에의 깊이. 옛날에 내가 죽은집에서 발견했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레디문(ledi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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