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페터 에커만이 괴테와 보낸 10년여의 시간을 정리한 방대한 기록, 《괴테와의 대화》. 에커만은 괴테가 죽기 전에 완성해 이것을 출간하고 싶어 했지만 결국 괴테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만약 괴테가 이 책을 보았다면 분명 흡족해했을 것이다. 괴테와 함께 살면서 그의 임종까지 지킨 며느리 오틸리에는 “에커만처럼 자기의 감정을 전혀 개입시키지 않고 시아버님의 말을 그대로 이해해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 마치 아버님의 말과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버립니다.”라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밝히고 있다. 에커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괴테에 대한 최고의 헌정을 이렇게 바쳤다.
젊은 문학도였던 요한 페터 에커만은 자신의 논문 ‘시학논고’를 출판하기 위한 추천서를 부탁하는 편지를 괴테에게 보낸 것을 계기로 괴테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의 잠재성과 능력을 높이 산 괴테는 출판을 도와주는 한편 자기 곁에 머물며 준비 중이던 자신의 전집 출판을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 괴테의 초기 작품까지 모두 외울 정도로 그를 흠모하던 에커만은 자신의 인생 경로를 변경하면서까지 그 제의를 수락하고 결국 괴테가 사망할 때까지 충실한 조력자 역할을 하였다. 그가 괴테 만년의 작품 활동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 본문 중에 괴테의 입을 통해 여러 번 확인할 수 있다.
1823년부터 1827년까지 1부, 1828년부터 1832년까지 2부이며, 3부는 역시 에커만과 유사한 시기에 괴테와 깊은 친분을 맺은 자연과학자 소레가 남긴 일기를 바탕으로 에커만의 일기의 공백을 메우거나 보충하였다. 소레 또한 《괴테와 함께 보낸 10년》을 출간하였다.
《괴테와의 대화》에서 만날 수 있는 괴테는 참으로 친근하다. 사랑이 넘치고 열정적이며 따뜻하고 사람들을 감싸 안는다. 옮긴이가 알리고 싶었다던 괴테의 휴머니티가 본문 곳곳에서 배어나온다. 또한 다양하고도 많은 사람과 교유하며 상호간의 긍정적인 면을 끌어내는 괴테도 존재한다. 한편 의심할 수 없는 성공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런 작품의 완성도를 끊임 없이 추구하고 비평가들의 평에 언짢아하기도 하며, 사랑에 실패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괴테도 있다. 괴테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여기서 빛을 내고 있는 것이다.
독일 여행 중 찾아가보았던 괴테하우스. 젊음으로 충만했던 그 당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파우스트〉가 어렵다고 투덜댔으면서도 꼭 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괴테 작품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의 근원에 다가가고 싶어서였다. 아담한 이층집. 잘 꾸며진 아름다운 정원과 햇빛이 들어오는 피아노가 있던 거실, 종이 냄새 가득한 그의 서재까지 무척 아늑하고 편안한 곳이었다. 그곳이 새삼 떠오른다. 팔걸이의자에 앉아 있다가 나-에커만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반기며 일어섰을 괴테. 마치 다시 그의 집으로 초청하는 듯한 《괴테와의 대화》, 이렇게 시공간을 뛰어 넘는 그의 초청에 몇 번이라도 기꺼이 응하리라.
요한 페터 에커만, 곽복록 옮김, 동서문화사, 2007년,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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