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의 두 여자
권현정
김&정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런 길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로 가는 길. 스페인 북서부의 산티아고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명인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까지 걸어갔던 길이라 하여 야고보의 길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다가 습격당하기도 하고 죽기도 했다하여 이 길을 걷는 사람을 순례자라 한다고 한다. 지금은 해마다 600만명의 사람들이 자아성찰 혹은 자기발견을 위해 혹은 믿음의 확인을 위해 800km의 이 길을 하루에 약 20km 씩 40여일에 걸쳐 걷고 있으며 해마다 구간을 쪼개서 몇년에 걸쳐 순례를 완성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유럽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집에서부터 걷기 시작해 산티아고로 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800km의 길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라면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로마와 더불어 유럽의 3대 성지로 꼽히고 있는 곳이다.
특히 이 길은 파울로 코엘료가 걸은 길이라는 것이 알려지고 또 모방송사에 의해 다큐멘터리로 제작되면서 우리나라에 카미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코엘료는 청소년기에 세 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며 수차례의 투옥과 세번의 이혼을 겪은 순탄치 않은 인생의 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산티아고의 순례여행을 계기로 문학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상처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이 카미노를 걷게 되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은 두 여자가 카미노에 발을 들여놓았다. 둘 다 방송작가로서, 한 여자는 결혼해서 아이가 둘이고 한 여자는 싱글이다. 바쁘지만 잘 나가는 여자 둘이 왜 카미노에 마음을 두게 되었는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생각해 보았다. 특히 나는 준에 주목했다. 남편과 두 아이를 두고 떠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그리고 남편이 그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해준데에는 본인의 결단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이해했다. 즉 내가 무언가에 대한 결심이 섰을 때, 주위 사람들은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 그녀는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많은 것을 얻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걷기가 아니다. 때로는 피레네 산맥 같은 고된 길을 넘어야하고 때로는 지루한 길을 걸어야 하며 8kg의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과 한낮의 뜨거운 태양, 그리고 예고없이 찾아오는 비바람과 싸워야하며 수시로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물집으로 인한 통증도 견뎌내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숙소가 다 차버리지는 않았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어디서 배낭을 내려야할지에 대한 고민도 덤이다.
이 책은 그녀들이 카미노를 걸으면서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했던 일들을 비교적 재미있고 자유롭고 세속적으로 담아놓았다. 즉 파울로 코엘료의 느낌이 아니라 방송작가라는 그녀들의 직업적 냄새가 어느 정도 풍기는 그런 내용이다. 이제 다시 그녀들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카미노의 마법이 남겨놓은 자취는 그녀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느낄 수 있다. 책 속의 human report라는 코너에서 소개되는 카미노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또한 카미노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조금 거창한 표현을 빌자면 인류애가 아직 남아있음을 깨닫게 해주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성지 순례길이 아닌 인생 순례길이라고 불리는 카미노.
우리나라의 무분별한 여행상품 속 단체관광객으로 인해 진정한 카미노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기를 바라며 나도 언젠가 그 길을 걷게 되기를 꿈꾸어 본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오즈(flyo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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