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아란타로 가다
설흔
생각과느낌
"너는 무엇으로 문을 부수겠느냐."
조선의 천재시인 이언진과 한일사의 미스터리인 통신사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데, 거기에 이 책이 소년 청유의 성장소설이라고 하니 더 궁금했다. 지금까지 읽은 성장소설들 대부분이 현대물이었기에 조선의 성장소설은 또 어떤 느낌일까 자뭇 궁금했기 때문이다.
한일사의 미스터리인 통신사 살인사건은 1764년 4월 7일 최천종이 일본인의 칼에 찔려 사망한 사건을 가리킨다. 역사서적들을 종종 찾아 읽긴 하지만, 통신사 살인사건에 관련된 내용을 이번에 처음 접했다. 역사적 사건을 접할때마다 느낌이 묘하다. 그리고 웬지 좀 더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단 생각이 들어, 종종 검색을 해보거나 관련도서를 찾아보기도 한다. 영목전장이라는 일본인은 최천종이 자신을 도둑으로 의심해 구타하자 우발적인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죽였다고 자백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조차도 어딘가 어설프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서기 김인겸의 말마따나 인삼 밀무역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다. <내일을 여는 역사> 라는 책에서도 이 살인사건에 대한 내용을 잠깐 들여다 볼 수 있는데 그 책에서는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살펴 볼 수 있다. 그 책에 의하면 당시 조엄이 남긴 <해사일기>에서 거울을 잃어버린 최천종이 그를 의심해서 채찍으로 때렸고 그 원한때문에 죽였다고 나와 있다 한다. 공식적 사건 진상이 이렇다 보니 이 사건을 다룬 다른 책속에서도 통신사 살인사건에 대한 내막은 거의 비슷비슷하다. 다만, 흥미로운점은 일본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해 여러가지 설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 두사람이 한 여자를 둘러싼 치정관계였다느니, 조선인삼 밀수입에 얽힌 배당문제 때문이라는 것들이 그것이다.
<소년, 아란타로 가다>에서 작가는 공식적 사건 진상을 이야기하며 그 속내는 인삼 밀무역과 관련된 내용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소년 청유가 통신사에 들어오는 조건으로 인삼 밀무역을 하기로 했었기 때문이다. 살인사건을 바라보는 청유만큼 나 역시 두려움에 떨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도 난 청유를 실존인물이라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작가의 글'에서 작가가 건넨 고서점 주인과 책 이야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청유가 바라보는 모습들, 그리고 그 내면의 변화까지 마치 내가 느낀것마냥 생생하게 다가왔던 것은.
청유를 위기에서 구해준 이언진을 보며, 난 청유에게 쏟았던 나의 눈길을 이언진에게 보내본다. 천재시인 이언진은 실존인물 (1740~1766년) 이다. 27세때 병으로 죽은 이언진. 그는 실제 어떤 사람이었을까? 소설을 읽지 않았을때만 해도 시문에 재능이 있다는 정도, 그리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었는데 책을 덮은 지금은 웬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재능이 있었지만, 그 재능의 빛을 발하기도 전에 떠난 그. 무엇보다 가슴 아팠던 것은 소설속에서 박지원과 그 사이 있었던 일 때문이다.
신분과 재력, 권력은 있는 이에게만 든든한 벽일뿐. 요즘 <대왕세종>을 즐겨보고 있는데 노비신분이었던 장영실이 그 재능을 인정받아 벼슬까지 오르게 되는 장면을 보면서 세종대왕과 같은 사고를 지닌 인물이 많았다면..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장영실이 벼슬을 받는 그 과정에 참 많은 반대가 있었고, 그 당시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태도가 어떠했는가를 알기에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도 그렇다. 신분보다 재능과 기술을 중시했다면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해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너는 무엇으로 문을 부수겠느냐."
이언진의 이 말이 가슴에 와 박힌다. 시로써 문을 부스겠다는 이언진.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문을 부술까? 평생 그 문을 부수지 못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살짝 아니 많이 겁이 나지만, 지금은 그 두려움부터 없애야 겠다. 그리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겠다.
큰 긴장감이 있거나 재미가 있는 소설은 아니다.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다. 이 책은 생각할 꺼리를 내게 안겨준다. 책을 덮은 지금까지도 이언진의 그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별이(rubiya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