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의 무지개 1
아사다 지로 지음
창해
아사다 지로의 작품은 <철도원> 이후 처음이다. <철도원>은 사람의 감성과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적인 내용이라서 아사다 지로가 대하 소설을 썼다고 하니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런지 짐작이 되질 않았다. 특히 이 <중원의 무지개>는 총 4부작으로 일본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의 역사를 담고 있어서 평소에 우리나라 시각으로만 바라보던 중국 역사를 일본은 또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궁금증은 더해갔다.
1권은 주로 마적의 총두목으로 만주의 실권을 장악한 총남파인 '장작림'과 그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백호 장이라고 불리는 장작림은 마적의 외모와는 딴판이면서도 풍기는 카리스마는 어느 마적 못지 않으며 마적들은 물론 주 본거지인 신민부의 백성들로부터도 임금도 받지 못하는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다. 저 멀리 중원의 패자가 되기 위한 장작림의 소망은 그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한 것이 아닌 4억의 백성이 굶지 않게 되는 그 날을 위한 것이다. 장작림 이외에도 장작림이 인력시장에서 1천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산 이춘뢰라는 인물도 앞으로 이 작품에서 주 역할을 할 인물로 부각된다.
장작림은 이춘뢰와 함께 건륭황제가 숨겨두었다는 천명을 받은 이에게만 주어진다는 황제의 징표인 용옥을 찾아 나서고 마침내 그 용옥은 장작림의 손에 무사히 들어온다. 하지만 장작림은 어렸을 때 점술사가 자신을 가리켜 만주의 왕자가 되리라고는 했지만 만리장성을 넘는 중원의 패자가 된다는 예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용옥을 아들의 손에 넘기게 된다. 장작림의 아들은 장학량은 그 용옥을 받고도 무사히 살아남아 황제의 자격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1권 2장에서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태조 누르하치와 그의 아들인 추옌과 다이샨의 6만의 팔기군으로 20만의 적과 싸워 승리를 거둔 전투 이야기가 나오고 1권의 마지막에는 현재 청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서태후와 서태후를 가까이서 모시고 있는 환관인 대총관 태감 이춘운이라는 인물이 잠깐 등장하는데 바로 이 이춘운이 이춘뢰가 어릴 적 여동생과 함께 버려두고 떠난 이춘뢰의 남동생으로서 2권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대강 짐작하게 해준다.
1권을 읽다보면 나오는 인물들은 대하소설이지만 풀어나가는 문체는 도저히 대하소설이라고 생각되지 않을만큼 부드럽고 유연하고 낭만적이다. <철도원>에서 사용된 그 문체 그대로의 느낌이라고 해도 좋을법하다. 특히 백태태라는 점술사 할머니가 예언을 풀어놓는 장면은 한편의 시라고 해도 좋을만큼 울림을 지니고 있다. 또한 청태조인 누르하치의 전쟁 전 독백장면이나 건륭황제 시대의 명장 조혜 장군의 건륭황제에게 바치는 조서에서 볼 수 있는 문체의 느낌은 대하 소설보다는 연애소설에 나올법한 부드러움이다. 그리고 수방이 비적이 된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나서 토해내는 가슴 속 사연은 마치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직접 그의 옆에서 듣고 있는 것 같은 슬픔과 처절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런데 이러한 부드러움이나 마음을 울리는 문체가 전혀 거북스럽지 않고 더욱 더 이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런 점에서 보자면 번역을 하신 분의 노력에도 진심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서 2권을 읽어야겠다.
중원의 무지개 2
아사다 지로 지음
창해
2권의 분위기는 1권과 사뭇 다르다. 1권이 장작림이라는 총남파 두목을 비롯하여 등장인물들에 대한 맛배기 및 사건의 배경들에 중점을 두고 쓰여졌다면 2권은 본격적인 사건들이 시작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래서 2권은 1권에 비해 좀 더 많이 대하소설의 느낌이 가미되었으며 등장인물들을 둘러싼 갈등과 음모가 얽히고 설킨채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2권의 초반은 북양육군을 창설한 청나라 군부의 실권자인 원세개와 그의 친구이지만 온전하게 그에게 마음을 다 줄 수만은 없는 만주의 총독인 서세창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여기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요시나가 마사루라는 사관학교 출신의 일본군 장교인데, 우연히 장작림 일행을 만나게 되면서 장작림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와 일본에서 청나라 유학생을 상대로 하숙을 하고 있는 그의 어머니인 요시나가 치사의 등장이 범상치 않은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바로 이춘뢰의 고향 사람이자 이춘뢰가 고향을 등졌을 때 동생들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던 양문수가 무술변법에 실패하고 일본에 망명하게 되었는데 양문수는 이춘뢰의 여동생과 결혼하게 되고 바로 그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후견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요시나가 치사이다.
2권의 후반부는 이제 나이가 들어 죽음을 눈앞에 둔 서태후와 서태후에 의해 유배된 광서황제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여기에 서태후와 대총관 태감 이춘운을 도와 모종의 일을 꾸미는 인물로서 북경에 거주하는 뉴욕타임즈 기자인 토머스 버튼과 영국인인 백하우스 교수 그리고 서태후의 숨겨둔 손녀로 등장하는 장수안이라는 여성의 이야기가 양념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서태후의 중대한 결심 즉 청나라는 내 손으로 내가 망하게 하고 죽겠다는, 그리고 절대 외세의 손에 넘겨주지 않겠다는 서태후의 결심이 실행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서태후와 서태후가 직접 유배를 보낸 광서황제가 전신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는 장면은 또 한번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명장면이다. 그리고 광서 34년 음력 10월 22일 미시에 서태후 자희가 세상을 떠나면서 죽음의 자리에서 하달한 의지는 절대로 이 나라와 이 국민을 다른 나라에 넘기지 않겠다는, 대청국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서태후의 절절한 의지를 실감케 했다.
"나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가 되었다"라고 공언한 아사다 지로의 야심작인 <중원의 무지개>! 진도가 나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빨리 3권으로 달려가야겠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오즈(flyo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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