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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숨은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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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신
김점선
여백미디어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그랬더니 읽고나서 멍한 기분과 함께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책을 펼쳤다. 이제는 읽는 것이 아니라 보고 느끼려고 노력했더니 다른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숨은 神 >. 이 책은 태상호 사진가의 아프카니스탄을 담은 사진들에 김점선 화백의 그림과 글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작품이다. 아프카니스탄 사람들의 슬픔, 고통, 절망, 때로는 희망, 웃음, 즐거움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 신도 버린 듯한 그 불모의 땅, 고통의 땅에서 나오는 소리를 누군가가 엿듣고 있다. 살기 위해 아니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구걸하는 아이들의 눈빛을 누군가가 마주하고 있다. 바로 숨은 神 이다.

나는 종군사진가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비참함과 고통 그리고 슬픔을 극대화 시켜 표현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연구하며 먹이감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고통에 헐떡이는 표적을 찾아 기사화 시키는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바로 앞에서 소녀가 독수리떼에게 살점을 뜯기고 있는데, 오로지 자신의 작품을 위해 퓰리처상을 위해 그 소녀의 고통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이들의 사진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아직까지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태상호님의 사진들은 대체적으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절망과 고통속에서도 꿈틀대는 희망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비록 사진 속 그들이 작가와 같은 느낌을 가졌을지의 여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 하여도 그들의 아픔이 언젠가 종식되리라는 손톱만큼의 확신이 느껴지는 사진들이다.

거기에 마치 유치원생이 그렸을법한 김점선님의 밝고 경쾌하고 희망적인 색과 글이 합쳐지니 손톱만큼의 확신이 이제는 손바닥만한 확신으로 커간다. 홀로 남은 소녀를 감싸안고 있는 천사, 절망 속에서 올리는 기도를 전달하는 천사, 배고픈 소년에게 닭 한마리를 건네주는 천사, 헐벗고 굶주린 영혼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천사...  김점선님의 그림은 아무리 절망적인 사진이라도 유쾌하고 즐겁게 만들어버린다. 마치 아이들이 낙서하는 듯이 장난스럽게 그린 그림들에 웃음이 있고 희망이 있고 약속이 있다. 사막의 모래밭에 장미가 피고, 딱딱한 돌덩이에서 푸른 풀들이 자라고 휑한 모래밭에서 백합이 피어나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들에게 숨은 神 의 존재는 무엇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1달러짜리 지폐를 던져주는 미군들이나 기자들일까, 그들을 치료하고 약을 나누어주는 군의관이나 간호사들일까, 아니면 언젠가 여기서 벗어나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손톱만큼의 희망일까. 그들에게 숨은 神 이 무엇이든지 숨은 神 이 있다는 존재감만으로도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리 그들의 사진을 찍는다한들, 아무리 그들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한들, 그들의 고통을 희망으로 바꿔줄 수 있을지 없을 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감 속에서 그들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그들에게로 가는 길이라도 찾은 듯이 그렇게 작업했다는 김점선 화백님의 말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이제와서야 해보는 내가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오즈(flyo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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