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렛 길리아
장병주 지음
문학코리아
가끔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책들이 있다.
우리에게 외면받은 안타까운 소재를 담담히 풀어가면서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느끼게 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글쓴이 자신이 의식적으로 내용을 우울하게 써서 먹먹한 경우가 있다.
이 책은 절대적으로 후자다.처음 만나는 작가라 앞표지 날개의 작가소개를 열심히 봤는데,
여성의 숨겨진 열정과 상처, 광기와 고통을 내면심리를 통해 이처럼 치열하게 묘사한 작가는 일찍이 없는 듯하다. 사랑하기 때문에 생의 전부를 올인하고, 그 고통을 피 토하듯 한송이 스칼렉 길리아로 피워놓는 여자와, 상처받지 않으려 사랑을 부정하면서도 이성으로도 어쩔 수 없는 광기와 같은 열정으로 다가가 더 커다란 상처를 통해 스스로 쌓아놓은 요새를 파괴하고 비로소 다시 태어나는 여자.
스칼렛 길리아, 짓밟히고 고통당할수록 스러지지 않고 오히려 찬란한 진홍빛 꽃잎으로 피어나는 사랑. 소설은 바로 여성의 사랑과 순수, 열정, 광기를 가장 현대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참으로 소설의 완결편이고, 백미다.라길래, 꽤나 기대하고 읽었다.
다 읽은 후의 감상은- '우울한, 끈적이고 불륜으로 얼룩진 아침드라마를 본 느낌'이라는 것이다.
여성의 숨겨진 열정과 상처, 광기와 고통을 그려낸 것은 좋지만 이렇게 우울하고 먹먹하게 그려낼 필요가 있었을까?
소설의 주인공인 현진은 후처의 딸이다. 아버지는 그 이후로도 수 많은 여자와 바람을 피지만 현진의 어머니는 그가 늘 자신의 곁으로 돌아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현진은 가부장적인 바람둥이 아버지와 매번 감정을 삭히고 순응하는 어머니 밑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여자로 자란다.
물론 가정형편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설안에서 보여지는 이유들만 보면, 현진이 그렇게 까지 우울해하고 고민해야하고 광기를 지닐 이유가 희박하다.
잘쓴 글쓰기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문이 없이 물흐르듯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대학시절, 소설 강습 수업 초기에 몇번이고 내가 쓸 소설의 주인공에 대한 프로필을 만드는 훈련을 한 적이 있다.
막상 내가 쓸 소설에는 등장하지도 않을 어린시절의 추억이나 트라우마, 배경, 습관 등등...을 말이다.
작가는 주인공들을 100% 알고 쓰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 인물에 대해 알기위한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주인공의 습관이나 과거등을 흘려주어 주인공이 실제의 인물처럼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다 읽은 독자가 "그래, 그 주인공은 이런사람이고, 이런일을 겪을 대는 이렇게 할 것 같아"라는 추측까지도 가능할 정도로 독자에게도 '아는 사람'이 되게끔 해줘야 하는 것이다.
<스칼렛 길리아>를 보면서 내가 느낌 먹먹함은 이것 때문이었다.
난 <스칼렛 길리아> 속의 어느 인물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주인공인 현진 조차.그녀의 고민이 우울한 집안 분위기 때문인지, 건초염에 걸린 손 때문인지, 사랑하는 남자를 잃은 상실감 때문인지 도통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조차 간단하게 그려진 사람이 없이- 무언가 그 뒤로 숨겨진 이야기는 무척이나 많은데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먹먹함이다.
한동안 아침드라마들이 불륜과 꼬인 집안관계를 주제로 다룰 때가 있었다.
종종 주부들이 왜 이런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는 걸까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 드라마를 같이 보았던 건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전후 사정들과 이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칼렛 길리아> 그런 전후 사정이 없다.
그냥 마구 꼬인 불륜 드라마를, 그것도 정점으로 치닫은 클라이 맥스 부분만 한편 본 느낌이다.도통 내용은 이해할 수 없고 주인공도 이해할 수 없는채, 먹먹하기만 하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씨엔(iandy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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