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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영원한 것은 없기에




영원한 것은 없기에
로랑스타르디외 지음
문학동네

 
사람에게 과거란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것일까? 그저 지나간 시간일 수도 있고, 죽는 순간 떠오르는 한 장면일 수도 있겠다. 다만, 잊지 못할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안다. 과거란 아무리 떼네버리고 싶어도 끈덕지게 가슴 한 켠 어딘가 숨어 있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 그 영롱한 결과물인 아이.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온 아이의 실종은 사랑하는 두 사람을 돌아 올 수 없는 강 저편으로 갈라놓는다. 소설의 주인공인 주느비에브와 뱅상의 이야기다. 사랑스런 딸 클라라가 어느 날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힘든 삼개월을 보내며 결국 딸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주느비에브. 그러나 여전히 뱅상은 딸의 흔적을 기다린다. 결국, 사랑해 마지않던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간다.
 
그렇게 십 오년이 흘렀다. 이야기가 시작된다.
"난 죽어가고 있어 뱅상 난 죽어가 보고 싶어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보고 싶어 당신을 보고 마지고 당신 목소릴 듣고 싶어 보고 싶어 뱅상 난 죽어가."
이렇게 시작되는 그녀의 편지를 뱅상이 받으면서. 과거를 지웠다고, 그녀를 잊었다고 생각하며 지낸 뱅상이었지만, 편지를 다 읽기가 무섭게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고 차를 몬다. 주느비에브가 있는 그 곳으로.
 
책의 줄거리는 세 문장이면 요약된다. 그녀가 아프다. 그가 간다. 둘은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낸다. (덧붙이자면 그녀의 일기가 중간에 포함된다.) 등장인물은 과거를 버렸다고 생각한 한 남자 뱅상과 과거를 버린 척 했지만 내내 손에 쥐고 있던 한 여자 주느비에브다. 그게 다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이 책은 진한 맛이 난다. 읽을 때는 문장이 눈을 잡더니, 읽은 후에는 잔영이 마음을 붙잡는다.
 
세 가지의 잔영이 남는다. 과거, 글, 사랑. 비슷한 듯 다른 세 가지다.
 
뱅상은 그녀에게 가는 길 내내 과거가 들러붙는 것을 밀쳐낸다.
"몸과 뇌에서 과거가 모조리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현재만 남았으면, 오로지 현재 속에 존재했으면."
이렇게 속으로 되뇌이면서 말이다. 그에게 과거란 사랑하는 여인들을 잃은 고통의 시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과거란 놈은 끈덕지게 그의 기억 속을 헤집고 다닌다. 그러나 주느비에브를 만나고 마지막 시간을 함께하며 그는 바뀐다. 참혹했던 과거는 여전히 슬픔으로 가득찼지만, 뱅상은 과거를 과거로서 인정할 수 있게된다. 그녀의 마지막 유품인 노트 세 권을 읽지는 못하지만 내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된다.
 
글에 치유의 효과가 있다는 건 이젠 많은 사람들이 알고 공감하는 주제다. 그 도움을 가장 힘든 시기의 주느비에브도 실감한다. 매일 밤 희미하게 남은 기운으로 그녀는 글을 쓴다. 그리고 고백한다. 쓰기를 통해서만 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글쓰기를 멈춘다면 죽고 말 것이다. 오직 글만이 내가 살아 있도록 지탱해준다."
글쓰기는 그녀 곁에 아무도 없던 15년간 그녀 삶을 지탱해 준 친구이자 연인이자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을지 모른다.
 
그리고 사랑. 클라라를 향한 뱅상과 주느비에브의 끝없는 기다림의 사랑. 비록 함께하지 못했지만 결국 삶의 마지막에서 서로를 찾게 된 뱅상과 주느비에브의 오랜 사랑. 그들을 봐도 그렇지만, 사랑이란 언제나 고통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랑을 갈구하는 건?
"기억에 새겨둘 것. 우리에게 기쁨이 존재했음을. 의심하지 말 것."
그 안에 고통보다 컸던 기쁨이 존재하길 때문이 아닐까. 그녀를 다시 만나고 짧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그는 속엣말을 한다.
"그러니까 행복은 다름아닌 그녀와 나,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단순한 것이었다."
라고. 그 무엇도 아닌 단지 두 사람만 있다면 사랑은 완성된다.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죽음, 그보다 별것 아닌 것들에도 깨어지기 쉬울만큼 약하지만 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뱅상은 바뀐다. 모든 걸 체념한 사람에서 다시 시작할 기운을 얻는다. 과거 또한 즐거움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 가는 길에 그 힘을 전해주고 간 주느비에브. 그녀의 강함이 놀랍다. 책의 제목은 '영원한 것은 없기에' 였지만, 글쎄. 그녀의 사랑은 죽음을 넘어서 그의 마음에 다시 살아났으니. 어쩌면 영원하다란 존재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 -  굼실이(zkvmzk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