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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옛날이야기

옛날이야기

미우라 시온 | 권남희 옮김

들녘 2009.04.24

3개월 후 지구가 운석과 충돌한다면?

 

중학교때, 학급문고집을 만들면서 여러질문에 대한 반아이들의 답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투명인간이 된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소원 세가지를 들어준다면 무슨 소원을 빌겠는가? 종말이 코앞에 다가왔다. 그럼 무엇을 하겠는가? 등등..아이들의 이런 저런 대답이 적힌 종이를 읽어가며 피씩피씩 웃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보면 종말이 온다는 이야긴 끔찍하고 무서운 이야기다. 이 세상에 모든것이 사라지고 만다는 이야기니까. 그런데도 아이들의 대답에서 심각하거나 진지한 내용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난다던지, 맛있는 음식을 한없이 먹는다던지..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피씩 웃음이 나는 대답들. 그때 난 뭐라고 적었던가 기억해내려고 애쓰지만 그 기억이 정확치가 않다. 어렴풋하게 가족들과 파티를 한다던가, 여행을 떠난다던가 하는 대답이었던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3개월후 지구가 운석과 충돌한다면 어떻게 할래?'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당신은 뭐라고 할 것인가. 나라면...글쎄...당장 뭐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아마 '에이 설마' 하며 피씩 웃고 말겠지. 지금부터 3개월 후 지구가 운석과 충돌한다는 보고가 나온다. 그런데 탈출로켓에 탑승할 수 있는 사람이 1000만명으로 제한되어 있다고 한다. 당신은 그 로켓의 티켓을 얻기위해 노력할 것인가? 그 티켓을 손에 쥐기 위해 발버둥칠것인가? 아니면 변함없이 하루 하루를 살아갈텐가.

 

나라면 어떡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많은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큰 업적을 세우지도 않는 나에게 로켓의 입장권이 쥐어질리는 만무...그렇다면 그 티켓을 얻기 위해 발버둥치기보다는 지금처럼 변함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아마도 나라면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비슷했을꺼란 생각이 든다. 3개월 후 지구가 운석과 충돌한다고 해도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꺼란 말이다. 하지만, 웬지 억울할것은 같다. 무덤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도 '정말 3개월 후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웬지 모를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갈것도 같다. '어차피 끝날인생 즐기면서 살자'라고 막 살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의 삶을 살지 못하였기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난, 아직 할일이 많다구' 그렇게 뇌까리며 책을 읽어나간다.

 

'옛날 옛적에 누가 누가 살았는데 말이지.." 할머니의 구수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책을 집어들었다가, 순간 당황스러웠던 책이 바로 요책 <옛날이야기>다. 제목만으로 책을 선택한 독자라면 '흠...이건' 하며, 도대체 저자가 무슨 의도로 이 책을 썼을까 생각에 빠지게 될것이다. 처음, 이 내용과 옛날이야기가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더랬다. 그렇다고 옛날이야기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저자의 이야기에 앞서 '일본의 옛날 이야기'가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으니 말이다. 일본의 옛날이야기를 보며 '어,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이랑 같네..그게 일본 옛날이야기였었나.' 하는 생각도 했던...일본의 옛날이야기가 저자의 상상력으로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는 즐거움도 있다.

 

이 책에는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러브리스, 로켓에 대한 추억, 디스턴스, 입강은 녹색, 도착할때까지, 꽃, 그리운 강가 마을의 이야기를 해볼까 가 그것이다. 7편의 단편집에서는 서두에 내가 언급했던 내용이 나온다. 바로 '3개월 후에 운석이 충돌하여 지구에 종말이 온다면?'이 그것인데, 책속 인물들은 무덤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아수라장이 변한 모습을 연상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 로켓의 입장권을 어떻게라도 손에 쥘 수 있게 하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나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그려질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도 아니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을 상상했던건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이제 3개월 후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버젓이 있지 못할꺼라는 이야기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들은 참으로 태연하다. 택시운전기사는 담담하게 종말을 기다리며 택시를 몰고, 여자손님은 3개월 후면 지구가 없어질지도 모르는데 성형을 한다. 그런가 하면 삼촌과 연예를 한 여고생은 종말이 오는데도 그저 삼촌을 보고싶어할 뿐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독특한 등장인물들이 눈길을 끌지만, 그들의 행동은 너무나 단조롭고 무덤덤해 웬지 묘한 느낌을 가져다 준다. 만약 나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읽었던 책이다. 그렇다고 확실한 결론을 내릴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허나, 문득 내 삶을 돌아보자, 조금은 허탈하기는 했다. 나름 앞을 보며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나에게 남은건 뭔가 싶기도 하고...당장 종말이 찾아온다고 해도 억울할게 없이 편히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기대했기에 다소 당황스럽긴 했지만,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그 속에서 나를 떠올려 보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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