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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여자 여자

 

여자 여자

이인환 지음
이레 2008.09.22
펑점

나를 기억하고 있을 남자가 몇이나 될까?

누군가의 가슴에 내 이름 석자가 고이 새겨져 있다면?

글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리 불쾌한 일은 아닌 듯 싶다.

누군가가 가끔씩 나와의 추억을 반추한다면 아니,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장소를 지나다가,  어느 노래를 듣다가, 어느 계절이면 불현듯 내가 기억난다면

글쎄, 이것도 기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버림받은 사람보다 잊혀진 사람이 더 불행하다니 말이다.

굳이 이 말이 아니더라도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 나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미소지을 일이고 괜시리 셀레는 일이다.

나이 먹었다는 증거인가?

 

[여자 여자]는 이인환 작가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여자 이야기를 쓴 책이나

각색 없이는 쓸 수 없는 이야기도 더러 있어 나름대로 각색해서 내놓았다고 밝힌다.

사실 그대로 세상에 내놓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어지간한 강심장 아니면 있는 그대로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각색 없이 썼더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부분은 아마 저자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책에는 남자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들고 뿅가게 만드는 여자에서부터 스치듯 지나는 여자까지 골고루 등장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눈에 띈 어떤 여자에게 빠져서 공부할 시기를 허랑방탕하게 날려보낸 이야기,

인생이 허망하고 덧없게 느껴져 골방에 처박혀 있던 시절 경부선 열차 옆자리에 앉은 덩치큰 아줌마 이야기,

청순가련형 대학생인 줄 알고 가슴 설레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술집작부였다는 여자,

붐비는 만원 버스에서 자줏빛 장미처럼 눈부셨던 처녀 같았던 아주머니,

유행가 가사 같았던 귀엽고 예쁘던 대학 후배와의 사랑,

날마다 같은 시간에 찻집에 와서 뜨게질을 하던 여인 등 모두 열여덟명의  여자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어보니 내가 이런 저런 인연으로 만난 남자 수와 얼추 비슷해 피식 웃었다.

남자 남자라는 책 한 권은 족히 나오겠네, 하면서.

 

[여자 여자]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평범한 여자 일색이지만 작가에겐 특별한 여자들이다.

세월과 일상 속에서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가물거리는 그녀들을 아스라한 추억 속에서 불러내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랑이 이루어졌든 이루어지지 않았든 모두 아름답다.

듣는 이까지 추억 속으로 데려가 희미해진 옛사랑을 떠올리게 만든다.

누구나 가슴 속에 자신만의 특별한 사람 한 둘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아련한 옛사랑에 잠기게 되는 날이나, 어느 날 문득 그리운 얼굴이 생각나면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추억으로의 여행을 떠나야 겠다.

즐겁고 유쾌하게 추억에 잠길 수 있을테니까.

저자는 그녀들이 지금 자신을 기억할 가능성이 0이라고 하지만, 모를 일이다.

책을 덮는데 왠지 나를 기얼할 남자들이 많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순전히 이인환 작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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