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지고 뻔해진 사랑이야기, 드라마나 가요나 모두 그 흔한 사랑타령이다. 하지만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라푼젤과 잠자는 숲 속의 공주까지 두루두루 섭렵하며 낭만적이고 완벽한 사랑을 위한 조기교육을 참 일찍부터 받았건만 정작 그 흔한 사랑에 대해서 정확하게 아는 건 없고 그저 누적된 환상들만 확인할 뿐이다. 실전에 들어가면 꼬이고 엉키고 뒤틀려 “내 마음 나도 몰라”가 되기 일쑤거나 도무지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매다가 결국은 “내 눈에 덮인 콩꺼풀” 탓으로 돌려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사람, 알랭 드 보통이라는 이 프랑스 남자는 참 대단하다. 남들은 그 거세고 난폭한 ‘사랑’이라는 감정의 파도에 한 번 휩쓸리면 허우적거리기도 바빠 죽겠는데, 이 사람은 그런 사람들을 약올리듯 날렵하고 능숙하게 파도타기를 하며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조금 얄밉다.)
이 책을 읽는 초반에는 “아, 보통이라는 사람, 좀 나이도 지긋하게 먹어서 사랑을 좀 더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연륜을 지닌, 그런 사람이겠구나. 철학이며 심리학,문학, 예술 분야까지 망라하는 지식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걸 어떻게 창의적으로 세련되게 써먹을 수 있는지도 아는, 쌓인 지식이 고지식하게 자기를 가두게 하지 않고 세상과 인간을 향해 열려진 창문으로 그 가지를 뻗어가게 할 줄 아는 멋진 사람이네~!!!”하고 감탄했었다. 그런데 책 마지막 역자 후기에서 이 책이 그가 스물다섯 살 쯤에 내놓은 처녀작이라는 글을 읽고는 참담했다. 그저 겨우 한 마디 “이 사람, 보통이 아니라 천재네...”
진부한 사랑이야기를 보는 저자의 진부하지 않은 시각이 이 책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랑의 시작부터 이별까지 그 세부 절차에 대한 철학적인 진단과 묘사는 놀라우리만큼 정곡을 찌르고, 사랑을 미화해서 대책 없는 환상을 품게 하는 이야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하다. ‘운명적’이라고 믿었던 만남이 일생일대 최악의 ‘실수’로 변질되어버리는 추한 단계까지는(내 생각에 그 단계까지 가려면 주인공이 결혼에 성공해야 할 것 같다.) 아니지만 실연의 쓰라린 상처를 안고 지구 종말을 맞이한 듯 자포자기의 절망과 비애감에 시달리다가 회복하는 과정까지가 이 책이 분석한 사랑의 과정이다. 그 과정마다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가 하면 알베르티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가 나오기도 하고, 레닌, 폴보트, 로베스 피에르가 사랑의 정치인라고 상징되기도 하고, 심지어 그루초 마르크스라는 희극인과 페기 니얼리라는 전문조언가까지 언급하면서 집요한 통찰력과 매서운 분석력을 과시한다.
‘낭만적 운명론’, ‘마르크스주의’(물론 칼 마르크스가 아니라 그루초 마르크스를 말한다.), 또 ‘낭만적 테러리즘’이나 ‘예수 콤플렉스’ 같은 용어들이 기존에 쓰이던 전문용어인지 아니면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새롭게 만들어낸 용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용어들과 그에 따른 설명은 유머러스하면서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유머러스의 압권은 보봐르 부인이 페기 니얼리 박사에게 현대적 해결책을 조언받는 장면이다.) 한편으로는 이 책의 여자 주인공 클로이의 입장에서 사랑을 조망하고 분석해서 사랑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의 통찰을 볼 수 있으면 참 재미있을 것 같다는 욕심을 부려보기도 했다. (벌써 그런 책이 나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해 사랑에 대한 분석과 통찰을 접하면서 ‘왜 사랑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해당하는 답을 이 글에서 찾았다.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p.143) 온전하게 살아있으려면 사랑을 해야 한다. 이 책에서 묘사한대로 우리는 한 마리 아메바라서 누군가가 나에게 형태를 부여해주기를 목말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왜 하필이면 너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너’가 내 앞에 나타났을 때 우연히 호르몬의 화학작용이 일어난 건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억압하고 있던 내 무의식의 일부가 ‘너’를 통해 불쑥 모습을 드러낸 건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교육받은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이 가끔씩 느닷없게 조기 교육의 효과를 입증하려는 건지도.. 어쨌든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서처럼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건 맞는 말인 것 같다. 이 말을 증명하려는 듯 이 책의 주인공도 결국 새로운 여인과 새로운 사랑에 빠져든다. “아무리 확고부동한 확실성에 이르려고 몸부림을 쳐도[그 결론에 번호를 붙여서 단정하게 배치해놓는다고 해도] 분석에는 절대로 결함이 없을 수 없다는 교훈, 따라서 아이러니로부터 절대로 멀리 벗어날 수 없다는 교훈”(p.273)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그러니 이제 좀 현명하게 사랑해보자. 알랭 드 보통처럼 나름대로 열심히 내 사랑을 조망하고 통찰해가면서, 적어도 사랑하던 사람과의 만남이 일생일대 최악의 실수가 되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도록. 사랑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은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내 삶을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사랑에게 기꺼이 무릎을 꿇자.
by 북카페 책과 콩나무-검은별(roberta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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